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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회의원은 늙지 않는다

등록 2021-11-24 17:49수정 2021-11-25 02:32

[숨&결] 양창모|강원도의 왕진의사

“눈이 침침해.” “안과에서 백내장 같은 게 있다고는 안 해요?” “내가 백내장 수술을 너무 젊었을 때 했어!” 속으로 그랬다. ‘에이 참, 말도 안 돼. 백내장 수술을 젊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뭔가 잘못 아신 거겠지.’ “몇살 때 백내장 수술 했는데요?” “일흔다섯에 했어.” 이 말씀을 하신 할머니의 연세는 94살이었다.

작년 9월. 올해 3월과 5월. 할머니가 넘어져서 뼈에 실금이 갔던 달이다.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점점 더 자주 넘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장소도 달라졌다. 처음엔 밭에서 넘어졌지만 이젠 집 안에서도 넘어졌다. 옛날 집이라 안방에서 부엌으로 가는 문턱이 너무 높았다. 무릎 높이의 문턱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꼬리뼈에 금이 갔던 것이 5월이다. 그래서 방 안에 요강도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 앞길에서 넘어졌다. 할머니 말로는 돌부리가 자꾸만 발을 잡아챘다고 한다. ‘그럴 리가. 뭐가 발을 잡아당겼다는 거지?’ 의아해하면서 할머니 집 대문을 나서는데 그제야 집 앞 도로를 공사한 흔적이 보였다. 하수관 공사를 한다며 헤집은 도로를 흙으로 대충 덮어 놓은 곳과 기존 도로 사이에 3~4㎝ 높이의 격차가 있었다. 아주 작은 높이의 문턱이 생긴 것이다. 여쭤보니 몇달 동안 그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고 했다. 눈이 침침하고 다리의 근력도 떨어졌던 할머니는 그 문턱에 걸려 넘어지면서 또다시 갈비뼈를 다쳤다.

고르지 않은 땅.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는 늘 문턱이 있다. 내게 왕진은 아픈 사람들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문턱을 확인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 문턱이 사라지지 않을 때 차별이 생긴다. 누군가는 왕진 가는 것과 차별이 무슨 연관이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집 안에서도 넘어져 골절이 되는 시골 노인들이 엉금엉금 시내로 병원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 온몸이 막대기처럼 굳어져 자신의 침대에서조차 몸을 굽히지 못하는 사람에게 병원에 와서 코로나 접종을 하라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차별이란 말인가.

세상에는 차별이라 이름 붙여진 차별보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차별이 훨씬 많다. 나만 해도 할머니 댁을 찾아갈 때는 도로의 상태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나와서야 비로소 도로 위의 문턱이 마치 마술처럼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표류 중이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금세 차별이 사라지진 않는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수의 이익보다 한 사람의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느끼는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차별은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차별금지법이 생기는 것은 나에게 할머니의 이야기가 찾아온 것과 같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문턱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차별금지법은 보이지 않았던 차별을 보이게 만들 것이다.

아이들이 사회에 ‘다가올 미래’를 느끼게 만든다면, 아픈 노인들의 삶은 ‘이미 와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 사랑은 물처럼 아래로만 흐르는 것일까. 아이들은 그들의 미래를 우리의 현실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지만, 아픈 노인들의 삶은 그들의 현재를 우리의 미래로 느끼게 하는 힘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물이 아니다. 노인이라는 건 내가 될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니다. 되는 존재다. 숨만 쉬어도 노년은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아픈 노인에 대한 차별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한 차별이다.

시골에 마을진료소를 만들어보자고 시청에 제안서도 내보았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다. 더 기다릴 수가 없어 한달 전에는 조례제정을 위해 도의회를 찾아가 사정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진료소를 만들자는 기획은 차별금지법처럼 표류 중이다. 우리가 받는 차별은 우리가 하는 차별과 같다. 이 문제에 무관심한 공무원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쓰린 마음에 속으로 내뱉는 한마디가 있다. 그 말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래, 너도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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