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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두 지역살이

등록 2021-12-12 14:21수정 2021-12-13 02:31

[서울 말고]

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은퇴하면 사는 집 팔아서 시골에 집 짓고 텃밭 가꾸면서…’는 많은 도시 사람들이 꿈꾸는 노후다. 그런데 희망과 달리 은퇴할 나이가 돼도 도시를 완전히 떠나기가 쉽지 않다. 기대 수명이 길어지면서 더 오래 일해야 하고 도시의 생활 기반을 정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일자리만큼 직접적인 걸림돌은 부동산 자산 격차다. 대도시, 특히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지역과 자산 격차를 더 벌려놨다. 수도권의 부동산을 처분하고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은 자산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이 뒤따른다. 똘똘한 한 채가 곧 노후보장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중소도시나 농어촌으로 떠나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시기에 대거 지역으로 이주하리라는 희망 섞인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이유다. 수도권 은퇴자들은 여전히 부동산 시장 참여자로 남아 있고, 지역은 빠르게 비어가는 중이다.

이 틈에 4도3촌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나흘은 도시에서 사흘은 전원에서. 도시와 지역 두 곳에 생활 거점을 두고 도시에서 편리함과 지역에서 여유를 모두 누리는 삶을 말한다. 이른바 두 지역살이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너른 공간에 대한 갈증과 원격으로 일하는 환경의 변화도 새로운 흐름을 부추긴다.

지역에서 볼 때 두 지역살이 흐름은 반길 일이다. 은퇴자뿐만 아니라 누구든 지역의 새로운 이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역에서는 청년이나 은퇴자들을 정착시키려 안간힘을 써왔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인구 유입뿐만 아니라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이들조차 붙잡지 못했다. 이제는 지역소멸이 현실이 되고 있는데 정주인구를 붙잡는 데만 매달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당장 지역에 뿌리내리지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지역에 머무를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맞아들일 필요가 있다. 짧게 지역살이를 경험해 보는 이들부터 정기적으로 찾아와 머무르는 이들까지 모두 환영하자는 것이다. 지난달 국회에 발의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안’의 ‘생활인구’ 개념과 맥이 닿아 있다. 이제 두 지역살이를 하려는 사람들은 주말 텃밭에 관심 있는 일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디지털 기기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하는 디지털 유목민, 도시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고 싶은 청년들, 주말에는 자녀들과 자연 속에서 지내려는 가족들까지 모두 생활인구로 끌어안을 수 있다. 관광객이 아니라 이웃들로 적극적으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욕심을 내볼 만하다. 지역살이를 희망하는 수도권 인구를 지역과 연결해 상생의 틀을 짤 수 있다. 경북도가 발 빠르게 나섰다. 각 지역 특성을 살려 생산 일자리, 휴양거주, 여가체험, 교육연수 등 다양한 유형의 두 지역살이 지원계획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복수 주소제 도입, 빈집이나 농어촌 주택의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부동산 규제와 관련 세제를 손보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다. 농지와 농어촌 주택들이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가 따른다. 하지만 생활인구 늘리기가 지역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는 데 동의한다면 경직된 규제는 합리적으로 손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지자체들이 해온 다양한 이주 지원책도 두 지역살이 지원에 응용해볼 수 있겠다. 일본에서는 복수 거점 생활자들이 늘면서 지자체들이 빈집 수리비를 부담해주고 자산세를 깎아준다. 자주 와서 머물도록 고속열차표까지 지원해준다. 다양한 지역살이 경험이 장기적으로는 정주인구 증가로 이어지리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지역이 또 하나의 생활 거점이 되어 도시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를 주고, 지역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머물며 활력을 불어넣는 이 새로운 흐름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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