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되었던 조동연 서경대 교수에 대한 사생활 논란 말이다. 한 유튜버가 조동연 교수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공개하자 많은 언론 매체가 이를 검증 없이 보도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고 이는 인권 침해와 젠더 폭력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은 단호히 맞서지 못했고 논란 끝에 그는 선대위원장을 사퇴했다. 그러나 여전히 찌라시와 사진 등이 에스엔에스(SNS)와 메신저를 통해 돌고 있다.
화가 났고 환멸을 느꼈으며 동시에 나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불법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을 예고하자 그에 항의하여 나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하는 칼럼을 썼을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 좋은데 이런 종류의 글은 쓰지 않으면 좋겠어. 나중에 큰일 하려고 할 때 발목 잡히면 어떡해.”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반대하니까 반대한다고 하지 왜 앞날까지 생각하며 조심해야 하나. 그런데 이번 논란을 지켜보며 그때 그 말이 이런 상황을 일컫는 것인지 우려가 되었다. 어쩌면 내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나와 엄마, 할머니의 임신중지 경험을 드러내며 사회적 금기에 대해 질문한 것이 훗날 마녀사냥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두개의 선택지가 있다. 하나, 그렇다면 이처럼 되지 않기 위해 ‘큰일’에 해당하는 정치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 둘, 이런 사안에 목소리 높이지 말고 몸을 사리며 흠 잡히지 않을 행동만 해야겠다. 전자와 후자 모두 나를 옥죈다. 30대 페미니스트 여성이자 예술가로서 내가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을 비롯해 현재와 미래의 활동 범위를 좁힌다. 일상에서의 검열이 시작된다.
그가 선대위원장으로서의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개인사’에 집착하며 선정적으로 보도한 매체와 이를 비판적으로 읽지 못하고 조리돌림을 한 사태를 돌아본다. 조동연 교수의 아들이 ‘정상가족’의 범위 안에 해당하지 않는 혼외자이든 아니든 그건 그의 업무 능력과는 관련이 없다. 이 논란은 ‘정상성’에 대한 강박적인 열망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며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과 포용력의 한계다. 또한 남성이라는 제1의 성이 아닌 이들에게만 그 잣대를 지나치게 들이미는 젠더 폭력이다.
최근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특강에서 남학생 하나가 물었다. “‘낙태죄’는 폐지되었지만 감독님은 임신중지가 불법일 때 임신중지를 했으니 위법이고 따라서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않나요?”
사회구성원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 법이라면 그 법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어떤 시대상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제정되고 개정되고 폐지되며, 우리는 이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낙태죄가 폐지되었더라도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그에 따른 인식이 없다면 이런 종류의 사회적 낙인은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는 생각에 몸서리가 났다.
조동연 교수의 사생활 논란은 나를 포함한 개개인을 정확하게 옥죈다. ‘정상’의 범주에 쉽게 포함되지 않는 이들의 정체성을 검열하고 활동의 범위를 통제하며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한다. 그들만의 리그는 이렇게 지속된다.
이는 조동연 교수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개인적 문제에 대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에 따른 인권 침해와 젠더 폭력을 방관한 한국 사회의 문제다. 논란을 정확하게 되짚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검열하며 운신의 폭을 좁히게 될 것이다. 나/우리는 더욱더 소신 있게 말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며 더 큰 일들을 해내고 싶다.
※<한겨레>는 △성범죄 사건 등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예상되는 기사 △기사에 피해자가 부득이 등장해 해당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