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1769년 스위스 취리히 외곽. 스물세살 청년 페스탈로치는 버려진 자갈밭 4만㎡를 사들여 농장학교를 연다. 거의 ‘영끌’ 수준으로 빚을 내 마련한 것이다. 길거리를 떠돌거나 생활 밑천 하나도 없고 무지몽매한, 반쯤은 야생인 아이들 50여명을 모았다. ‘노이호프 빈민노동학교’는 그렇게 시작됐다. 농장 안에 버터·치즈 공장, 방적 공장을 세웠다. 아이들이 작업을 맡았고, 동시에 읽기, 쓰기, 셈하기를 배웠다.
문제는 ‘농장의 경제적 자립’에서 발생했다. 그 시대 가내 수공업 체제는 아동들의 노동을 싼값에 착취하며 유지했기에 노이호프 아이들이 만든 제품은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다. 1775년에 학교 유지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해서 1400프랑을 모았다. 그것만으로 역부족이었다. 결국 4년 뒤에 노이호프는 문을 닫았고, 1780년 페스탈로치는 자기 집도 내놓아야 했다. 야심 차게 일으켰던 첫번째 교육실험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산업혁명 초기였던 18세기 후반 유럽 풍경은 어수선했다. 오늘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내일 땅을 잃을지 몰랐다. 그러면 공장에 가면 되겠지 싶은데, 그곳이 조만간 문을 닫으면? 다른 일거리를 찾거나 부랑자가 되어야 했다. 농사 말고 다른 일을 할 줄 모르는 평범한 주민은 비참한 굶주림에 대한 공포가 있었고, 실제로 그런 사태는 자주 발생했다.
당시 혁신적인 사상가 루소와 진보적인 교육실천가 페스탈로치는 그와 같은 노동 조건의 불안정 상황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종합기술교육’을 내세웠다. 학교는 자본가나 국가를 위한 조직이 아니고 민중의 자녀를 키우는 곳이어야 한다. 지식의 강제 주입은 거부했다. 대신 아이들의 심신을 골고루 발달시키기 위해 생활과 노동을 통해 전인교육을 펼치는 터전으로 학교를 바라보았다. 페스탈로치는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민중의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 실험을 평생 거듭했다. ‘교성(敎聖) 페스탈로치’라는 표현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팬데믹과 기후위기, 기술 대전환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현시대에 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가르치기 힘든 요소를 가르치려 하는 담대함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2조는 모든 국민에게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 교육이념이라 밝히고 있다. 동의한다. 하지만 교육자들은 숙명적으로 ‘어떻게’라는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이다.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인격을 도야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산골에 묻혀 있는 작은 대안학교에서 교육하다 보니 공교육이 아니어서 수월한 지점들이 있다. 무엇보다 대학입시에 얽매이지 않아서 자유롭다. 만약 우리가 입시를 염두에 두고 학사 일정과 수업, 평가 기록들을 유지하려 한다면 지금까지 수행해왔던 아이들과의 면담, 현장 체험, 프로젝트 수행 시간은 지금의 2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교육과정 선택과 조직을 학생들의 특성과 요청을 고려하면서 교사들의 협의와 판단 아래 이끌어간다. 배움이 일어나는 장소를 교내 공간만으로 한정할 필요도 없다. 조금 더 살아 있는 세계를 배움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것을 대면하는 과정에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마주 선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 그들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 아니라 ‘토네이도 속에서 버티며 꺾이지 않으려는 꽃’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관심, 소통과 인정을 요구한다. 그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안으면서 함께 고통을 겪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공교육 체제는 다음 세대에 대한 사랑이 자리할 곳에 평가와 관리라는 시스템을 얹어놓았다.
내년에 새 국가지도자를 선출한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그간 교육정책은 빈한했다. 대입제도 변경,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존폐 문제 등이 주요 이슈였다. 재정 지원이나 법 체제 정비 외에도 방법은 있다. 개별 현장의 재량권을 늘리고, 교사들의 전문성을 신뢰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권한의 이양에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기, 서로의 혜택을 위해 협상하기, 작은 조직 잘 운영해나가기, 리더십 발휘로 어려움을 뚫고 나가기 같은 능력을 미래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가? 이른바 소프트 스킬의 시대가 오고 있다. 가르치기 힘든 가르침이다. 어떻게 하면 공교육이 이것을 잘할 수 있을지, 그 점을 염두에 둔 교육정책을 각 후보 진영이 설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