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두번째)가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시가격 관련 제도 개선 당정 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 송 대표, 윤호중 원내대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세금 깎아주기에 ‘올인’하는 듯한 모습이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에 이어 재산세 동결까지 검토하고 있다. 부동산 세금의 양 축인 보유세와 양도세 체계를 모두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18일 페이스북에 “어려움에 처한 민생 경제를 고려해 공시가격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우선 재산세나 건강보험료는 올해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민주당과 정부에 요청하자, 민주당이 20일 정부와 당정협의를 열어 ‘재산세 동결 카드’를 내놨다. 내년도 공시가격은 예정대로 발표하되 재산세를 부과할 때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기로 했다. 올해 집값 상승분은 내년 재산세 부과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집값이 급등했는데도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은 유례없는 조처다. 보유세 제도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서 시세의 70% 수준(아파트 등 공동주택 기준)인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90%까지 높이기로 했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보유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시가보다 크게 낮은 탓에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조세 형평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재산세 산정에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면 중산·서민층뿐 아니라 고가·다주택 보유자의 재산세와 종부세도 동결된다. 오히려 고가·다주택 보유자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중산·서민층이 아니라 집부자들을 위한 대책인 셈이다. 앞서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합심해 종부세 과세 기준을 공시가격 9억원(시가 13억원)에서 11억원(16억원)으로 올리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지난 8월31일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고가주택 보유자 상당수가 종부세를 면제·감면받았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진정으로 “민생이 어려운” 중산·서민층을 위한다면, 무차별적 재산세 동결이 아니라 중저가 1주택 보유자에 국한해 재산세 인상 상한선이나 세율 조정 등의 방법으로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게 옳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공시가격 6억원(시가 9억원) 이하 1주택자에 대한 재산세율을 2023년까지 한시적으로 인하했고, 올해는 공시가격 6억~9억원 주택에도 재산세율 특례를 적용했다. 전국 공통주택의 92.1%가 혜택을 봤다. 공시가격과 연동된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등도 조정계수 같은 완충장치를 마련하면 중산·서민층은 부담을 늘리지 않을 수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는 재산세 동결과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정책 혼선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는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지만, 다주택 보유자들이 살지 않는 집을 파는 것은 공급 확대와 효과가 같아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는 건 맞는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2일 “1년 정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아이디어를 제가 내서 당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해 ‘7·10 대책’ 때 다주택자 양도세율을 최대 65∼75%로 높이면서 올해 6월1일 법 시행 전까지 11개월의 유예기간을 줬는데도 매물 유도 효과는 미미했다. 10%포인트의 중과세를 유예해도 세율이 55~65%로 증여세 최고세율 50%보다 높아, 다주택자들이 매각 대신 증여나 임대사업자 등록 등 다른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끌어내는 정책 효과를 거두려면 중과세 유예 정도가 아니라 양도세율을 증여세율 이하로 낮출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타이밍을 놓쳤다. 다주택자들이 대선 이후를 바라보며 이미 ‘버티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처럼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부동산 세금 깎아주기는 ‘조세 정의’에 역행할 뿐 아니라 정책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보유세 실효세율을 대폭 높여야 한다”던 이 후보의 이전 주장과도 배치된다. 그런데도 앞뒤 가리지 않고 세금 깎아주기에 나서는 것은 박빙의 결과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특히 고가주택이 많은 서울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계산일 게다. 그러나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서 마음을 돌릴 고가주택 보유자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민주당에 대한 집부자들의 적대감은 민주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꼼수’를 쓰는 거고 대선에서 이기면 다시 올릴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 벌써부터 나온다. 반면 고가주택 보유자 가운데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세금과 무관하게 투표를 할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부동산 세금 깎아주기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따라갈 수 없다. 윤석열 후보는 이미 보유세와 양도세 세율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종부세와 관련해선 지난 11월14일 페이스북에서 “내년 이맘때면 ‘종부세 폭탄’ 걱정 없게 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종부세 폐지를 약속한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유예가 아니라 아예 폐지를 주장한다. 집부자들을 상대로는 민주당이 파고들 틈이 없는 것이다. 득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레 기존 지지층에게 실망과 박탈감만 안겨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집값 급등세가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각종 통계 지표에서 확인되고 있다. 16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값 동향’을 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0.07%에 그쳤다. 0.1% 이하로 내려간 것은 지난 5월 둘째주 이후 7개월 만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100 미만이면 집을 사겠다는 매수자보다 팔겠다는 매도인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매매수급지수’도 지난달 중순(11월15일) 서울 아파트를 시작으로, 지난달 말(29일)에는 수도권 아파트, 이달 중순(13일 기준)엔 지방이 100 아래로 떨어졌다. 전세도 매물이 쌓이면서 수도권 일부와 세종, 대구 등에서 전세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인식 확산, 투기 억제를 위한 보유세 강화, 대출 규제, 금리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만 속단하기는 이르다. 아직은 관망세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 깎아주기는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 집값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 만약 집값이 또 들썩인다면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것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집값 진정세를 확실히 다져 집값이 내려가도록 하는 것이다. 또 집값 폭등으로 악화된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도 시급하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 재원으로 활용하고, 질 좋고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도 덜어줘야 한다. 이런 공약들을 정교하게 만들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대선이 이제 80일도 안 남았다.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표방하는 정당이 집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건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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