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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신지예의 ‘정체성 정치’ / 안영춘

등록 2021-12-21 15:14수정 2021-12-22 02:31

“특정 종교, 민족, 사회적 배경 등을 가진 사람들이 전통적이고 광범위한 기반의 정당정치에서 탈피해 배타적인 정치적 연합을 형성하는 경향이다.” ‘정체성 정치’에 대해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사의 웹 사전 ‘렉시코’(Lexico)가 내린 정의다. 오늘날 정체성 정치의 대표적 하위 범주인 ‘젠더’가 예시에서 빠져 있어 아쉽다. 대신 ‘배타적’이라는 표현을 써서, 정체성 정치가 빠질 우려가 있는 함정이 뭔지 암시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정체성 정치는 소수자들에게 유력한 정치투쟁 수단이다. 이들은 기성 정치체제로는 대의되지 못하는 정체성을 억압의 경험을 통해 공유하고, 억압에 맞서 연대한다. 다만 두 개의 다른 정체성 사이에 오직 소수자라는 이유로 보편적 지평이 열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우리)의 고통은 오직 나(〃)만 알 수 있다는 도그마에 빠져, 억압의 사회구조를 직시하지 못한 채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배척하거나, 심지어 공격한다.

몇해 전 한 여대 페미니스트 그룹이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막거나, 일부 여성들이 예멘 난민 남성들을 잠재적 성폭력범으로 낙인찍은 일을 떠올려보라. 정체성 정치의 도그마는 때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요인으로 정체성 정치가 꼽히기도 한다. 쇠락한 공장지대인 러스트벨트의 하층 백인과 다른 소수 인종 간의 적대가 트럼프라는 ‘공통 억압’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에 요란하게 합류했다. 적잖은 이들이 그에게서 ‘변절’, ‘배신’을 읽는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 그는 정체성 정치의 극단적 일면을 보여준 게 아닐까. 그는 윤 후보가 “여성폭력을 해결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좌우를 넘어서 전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을 선택의 이유로 들었다. ‘젠더 정치’ ‘제3지대 정치’ ‘녹색 정치’ 실현에 윤 후보는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대안이라는 듯이.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젠더 정치 등을 결코 대표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본인만 모르는 듯하다. 자신의 변절을 ‘구국의 결단’으로 승화시킨 1990년대 후반 김문수·이재오류 ‘남성 전향 엘리트’의 정체성마저 엿보인다. 하기야, 하나의 주체 안에도 여러 ‘이질적 정체성’이 교차하는 법이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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