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김준 |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바이러스는 마치 생물처럼 유전물질을 지니고 있다.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복제를 통해 유전되는데, 이 복제 과정이 완전하지 않다 보니 오류가 계속해서 쌓인다. 예컨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AUGC 등 4개의 알파벳(염기) 철자로 구성된 글자수 3만개짜리 문장과 비슷하다. 이 문장을 고스란히 베껴낸 새로운 문장, 새로운 유전물질이 만들어진 뒤에야 바이러스는 완성될 수 있다. 그런데 일일이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오타가 하나씩 쌓일 수 있듯, 새로운 유전물질이 만들어지는 복제 과정에서도 오타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쌓인 오타를 변이라고 부르며 이런 변이를 지니고 있는 바이러스를 변이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는 처음 사람에게 감염됐던 원본 바이러스에 오타가 쌓여 새롭게 등장한 변이 바이러스인 것이다.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탄생하는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알파벳 수백만개 중 1개 틀리는 수준으로 드물게 변이가 생겨난다고 해도, 각 유전물질은 알파벳 글자수 3만개씩이나 되다 보니 최소한 바이러스 100여개당 1개는 새로운 변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감염 한번에 바이러스가 수억개로 불어날 수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 100개 중 변이 1개라 치면, 한 환자 몸속에서만 변이 바이러스 수백만개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감염과 전파 자체를 막아야 하는 이유이다. 또 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신을 맞으면 불어나는 바이러스 수가 확연히 줄어들고 퍼지는 정도도 약해져 새 변이 발생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등장한 변이 중 일부는 바이러스의 감염성이나 위험성을 늘리기도 하고, 일부는 인류가 지닌 가장 위대한 바이러스 대응책인 백신의 효과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가 대표적이다. 델타 변이는 기존 변이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지고, 감염됐을 때 증상도 심각하며,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도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오미크론 변이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백신을 맞은 사람도, 증상이 없는 사람도,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른 이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 변이 바이러스들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존하는 백신을 약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변이가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하루빨리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백신을 공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염증 확산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은 분명 백신이며, 마스크도 여전히 필수적인 수단이다. 물론 백신을 맞은 뒤에도 델타 변이나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백신이 감염 가능성을 확실하게 줄여주는 것, 설사 감염된다 한들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부스터샷이라고도 부르는 3차 접종을 강력하게 권고하는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는 18살 이상은 모두 3차 접종을 권고하였고, 5살 이상도 백신을 맞아 스스로를 보호할 것을 권고할 정도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끝마침으로써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을 획득하고, 이를 거쳐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퍼져나가지 않도록 막는 것, 이것이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긴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거리두기로 처하게 된 경제적 상황 때문에 죽어가고, 누군가는 거리두기를 완화한 뒤 확진자가 급증해 죽어가고 있지 않던가. 거리두기를 강화하든 완화하든 그에 맞게 세금을 확충하고 투입해 안전망을 더 확보해야 했던 건 아닐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현실을 더 견뎌낼 수 있도록, 백신 이상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게 백신의 효과를 누리며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