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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크리스마스 캐럴 울리던 골목

등록 2021-12-23 18:15수정 2021-12-24 02:32

우드크레스트 전경.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우드크레스트 전경. 사진 브루더호프 제공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서른두해 전 성탄 전야, 고3 여학생은 불 꺼진 거실에서 전기 난롯불을 쬐며 담장 너머로 들려올 합창을 기다렸다. 골목 어귀에서 어렴풋이 들리던 노래가 멎자 무리의 발걸음이 다가왔다. 모퉁이 집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들어온다. 노래 끝에 인사가 퍼진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고생은 두 줄짜리 전기난로가 모닥불 타닥거리는 벽난로로 바뀌는 상상 어린 경험을 한다.

2015년 11월 우드크레스트 공동체를 찾았

다. 침례교인들의 공동체인 브루더호프가 1954년에 뉴욕주 북부 리프턴에 연 마을이다. 브루더호프는 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에서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청년 운동에 힘입어 탄생했다. 하지만 나치의 득세로 탄압을 받자 파라과이로 망명했다. 지금은 7개국 26곳에서 2700여명이 함께 생산하며 이익을 공유한다. 성장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가난에 빠지지 않는 안전과 평화를 누리는 공동체이다.

고속도로를 나와 우람한 산세가 이어지는 시골길을 지나는 동안에도 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그리기 힘들었다.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에 나왔던 로라 엄마 같은 모습들일까 잠깐 상상해보았을 뿐이다. 다운타운에서 호수를 지나 마주한 우드크레스트 입구는 초록빛 밭이랑 대신 컨테이너와 화물트럭이 세워진 콘크리트 진입로였다. 하지만 언덕을 오르자 순식간에 100년의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빅토리안 양식의 목조 주택 사이를 오가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정말 로라 엄마 같았다. 머리에도 수건을 두른, 초롱한 눈빛을 가진 여성들이 담소를 나누다 말고 가죽 보머재킷을 입은 내게 상냥하게 머레이의 집을 알려주었다.

머레이를 만나고 트럭과 컨테이너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이들은 유기농 농사를 짓지만 몇몇은 전문직을 갖고 임금을 받아 공동체에 보태고 있다. 그럼에도 브루더호프의 주요 수입원은 두개의 사업체다. 친환경 목재 가구와 장애 아동용 보조기구 사업이다. 우드크레스트에는 보조기구 제조업체가 있다. 이 분야 미국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는다. 이들이 장애 아동용 기구를 개발한 계기는 단순했다. 1970년대 초 이웃 초등학교에서 새로 입학한 중증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 의자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왔다. 이들은 심혈을 기울여 의자 높이와 등받이 각도, 팔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었다. 지금은 자전거와 운동기구까지 첨단 과학을 동원하여 다양한 보조기구를 생산한다. 타인을 보살피는 마음이 결국 그들의 삶까지 지속 가능하도록 이끌어낸 것이다.

머레이가 안내한 마을의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또 한번 찡한 순간을 마주했다. 전쟁을 겪는 시리아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연대 편지가 교실 한쪽 벽을 메웠다. 머레이에게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지 물었다. 그들 모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했다. 연대를 위한 가장 빠른 소통 창이라며. 하기야 내가 연락한 방법도 이메일이다. 나의 선입견이 진부해서 멋쩍기 그지없었다. 그렇다. 새 길이 세상과 소통하는 이익을 줄 수도 침략의 도구가 될 수도 있듯이 어떤 마음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현실은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들른 회관에는 그들의 정신이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는 벽화가 있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할머니·할아버지, 중년의 남녀에 강보에 싸인 아기까지 가족사진처럼 어우러져 있다. 언제나 미완으로 남을 벽화다. 그리고 다른 벽에는 티베트 스님, 아메리카 선주민 소녀, 유대교 랍비, 자메이카 가수 밥 말리 등의 모습이 환하게 그려져 있다. 브루더호프에 영적 가르침을 준 스승들이라고 한다.

우드크레스트를 나올 즈음 왜 여성들이 로라 엄마 같은 옷을 입고 남성들은 옛날 농부 같은 모습인지, 왜 아이들의 옷에서도 새 옷 느낌이 나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을에 어린 무채색 기운은 모든 자원을 순환시키려는 그들의 세심한 검박함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의 흙은 더 붉고, 침엽수 이파리들은 더욱 푸르러 보였다.

열여덟살 적 골목에서 들려오는 캐럴 합창에 풀렸던 나의 마음을 브루더호프에서 다시 만났다. ‘불자의 집’이라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던 우리 집, 그 안에서 모든 종교를 거부하던 나에게 골목의 캐럴은 그 밤 편견과 차별을 걷어내고 모두의 안녕을 기도하는 순한 마음들의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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