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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근혜 사면, 불의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록 2021-12-28 15:16수정 2021-12-29 02:32

문재인 정부가 지난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복권을 결정했다. 지난 7월20일 지병 치료를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박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복권을 결정했다. 지난 7월20일 지병 치료를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박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김경욱 | 법조팀장

‘촛불정부’를 자임해온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했다. 촛불 함성으로 뒤덮였던 5년 전 광장을 이 계절에 다시 떠올리는 일은 그래서 더없이 참담하다. 정부는 지난 24일 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복권을 결정하며 ‘국민 화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대선을 70여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그를 사면하면, 대국민 화합이든 국민 대화합이든 이뤄진다는 뜻인가? 사면을 발표하며 대통령과 장관이 내놓은 수사는 장려하면서도 모호했다.

“우리는 지난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사면을 두고 한 말이다. 사면 주무부처 장관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딛고 온 국민이 대화합을 이뤄 (중략)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박 전 대통령 사면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사면의 후폭풍이 거세다. 돌아가는 모양만 보면, 국민 통합이 아니라 국론 분열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촛불정신 훼손’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보수 진영에서는 ‘보수 분열을 노린 공작’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온다. 한쪽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하기 위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을 끼워 넣었다는 풀이가, 다른 쪽에서는 한 전 총리 복권을 위해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끼워 넣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여야는 이번 사면이 대선에 미칠 파장을 주시하며 ‘지지 기반이 이탈하지 않을까’ 득실 계산에 여념이 없다.

국민 화합이라는 거창한 명분이 실렸지만, 그의 사면은 국민 화합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헌법질서를 부정해 국민의 요구로 탄핵당한 대통령이자,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징역 22년에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을 확정받은 중대범죄자다. 그의 형 집행을 면제함으로써 어떤 가치 아래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그동안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요구가 불거질 때마다 ‘국민 공감대가 우선’이라며 선을 그어왔다. 그런데 이번 사면은 ‘깜짝 사면’이었다. 없던 공감대가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생긴 것인가.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악화가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건강이 문제였다면 형집행정지를 검토해볼 수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쪽이 형집행정지를 신청하지 않았더라도, 관할 검사의 지휘에 따라 심의위원회를 거쳐 형집행을 정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화합은 구호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정부 발표대로 그의 사면을 통해 “온 국민이 화합해 통합된 힘으로 코로나19 확산과 그로 인한 범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그럼 엠비(MB)는? 박 전 대통령 사면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국민 화합이라면, 둘 다 사면하면 왜 안 되느냐는 취지의 반발이 이 전 대통령 쪽에서 나오는 이유다.

전직 대통령들의 과오와 재벌 총수 비리, 세월호 참사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동안 우리는 국민 화합이나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많은 것을 적당히 덮고 묻어왔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거나, 대강 시간이 지나면 문제를 덮음으로써 면죄부를 줘왔다. 그 결과는 어땠나. 전두환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민 대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이뤄진 전씨 사면은 분열과 갈등, 현대사 왜곡 시도로 이어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은 자유의 몸이 되는 31일, 옥중 서신을 모은 책을 출간한다고 한다. 일부 공개된 내용을 보니, 자신의 과오에 대한 진솔한 반성이나 사과는 빠져 있고, ‘언젠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식의 자기변명과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주를 이룬다.

불의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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