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세상읽기] 임재성 ㅣ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사면권은 위험하다.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됨은 명백하다. 사법부 최종판단을 행정부 수반 대통령이 무력화시키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사면권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면권이 매우 예외적이고 제한적으로만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 역시 공유하고 있다.
권력분립과 별개로 평등 문제도 제기된다. 왜 수많은 범죄자 중 일부만 사면되는가? 뇌물 받은 사람은 사면되었는데, 그 뇌물을 직접 받은 사람(최순실), 뇌물을 준 사람(이재용)은 왜 사면되지 않는가? 대통령을 한 적이 없어서라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건강상 이유? 감옥에서 아픈 그 많은 사람 중에, 아프다는 이유로 사면받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사면은 법이 평등하지 않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박근혜씨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하자 많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뇌물 등 중대 부패 범죄에 대한 사면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어겼다, 전두환·노태우 예에 비춰 봤을 때 반성과 사과가 전제되지 않은 사면은 갈등만 부추긴다, 이번 사면이 부당하고, 부정의하다는 비판이다. 조금 다른 주장을 해보려고 한다. 사면권 행사의 한계는 탄핵이며, 탄핵당한 이에 대한 사면권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미국 헌법 2조 2항은 사면권을 규정하면서 탄핵을 예외로 두고 있다. 미국 헌법에 명문으로까지 ‘탄핵에는 사면권이 행사될 수 없다’고 규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탄핵이라는 절차는 통상적인 사법부의 유죄 판결과는 전혀 다르다. 행정부나 사법부에 속한 고위공직자가 중대한 비위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경우, 입법부가 해당 공직자의 직무를 정지하기 위해 권력분립을 훼손하면서까지 개입하는 비상한 절차다. 사면권이 예외적으로 행정부의 사법부에 대한 개입을 인정했다면, 탄핵 역시 입법부의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개입을 허용하는 예외다. 헌법이 규정한 예외를 다른 예외로 무력화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사면도 국회의 탄핵 앞에서 멈추는 이유다.
미국과 다르게 한국 헌법에 명문 규정은 없지만, 헌법재판소뿐만 아니라 유수의 국내 헌법학자들 모두 ‘헌법 내재적 한계’라는 표현으로 탄핵에는 사면권 행사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탄핵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대통령의 사면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헌법재판소 헌법재판실무제요),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려대 이준일 교수).
물론 앞선 논의는 탄핵 자체에 대해 사면권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박근혜씨에 대한 사면은 탄핵 결정이 아니라, 별도의 유죄 판결에 대한 사면이었다. 탄핵 자체에 대한 사면은 아니니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먼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관련 국고손실죄를 제외하면 박근혜씨는 거의 동일한 사실관계로 탄핵 결정과 형사 판결을 받았다. 같은 범죄를 두고,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며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결정했고, 사법부는 20년이 넘는 징역형을 선고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전자에 손댈 수 없다고 한다면, 후자에 대해서도 손댈 수 없어야 한다. 같은 사실관계를 뿌리에 둔 형사 판결을 면하게 하는 순간, 탄핵 결정의 정당성과 권위가 흔들린다. 즉, 탄핵당한 박근혜씨 사면은 국회 탄핵소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권한을 사실상 훼손하는 헌법 위반 행위다.
다음으로 대통령 탄핵의 특수함이다. 대통령 탄핵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헌법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규정한 것은 개헌, 대통령 탄핵, 국회의원 제명 등 단 3가지밖에 없다. 이러한 엄격한 요건의 입법부 권한행사가 이루어진 경우라면 권력분립 원칙상 대통령으로서는 사면권 행사를 할 수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형사재판만을 거친 일반인에 대해 사면할지 안 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안”이기 때문이다(전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이석민).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었고,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최초의 사면이다. 선례가 없기에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위헌적인 사면이 선례가 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