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공직자는 시민이 듣기를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지난 9월23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회를 앞두고 인사말을 하고 있는 윤석열 후보.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요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다른 대선 후보들 사이에 ‘토론’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윤 후보는 “토론을 하면 결국 싸움밖에 안 난다. 후보 검증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고 하고, 양자토론을 제안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향해 “어이가 없고 정말 같잖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신지예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지지율 높은 사람들은 굳이 토론을 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윤 후보와 신 부위원장이 왜 그러는지, 이들의 행동이 선거 국면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논외로 하고, 이참에 민주정에서 공직자가 져야 하는 설명의 의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우리 사회에서 설명의 의무에 가장 익숙한 집단은 의료인과 환자, 특히 의료소송 당사자들일 것이다. 의료소송에서 의료인이 환자에게 적절한 설명의 의무를 다했는가는 중요한 법적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인이 감당해야 하는 설명의 의무는 단지 의료적 진단이나 처치에 대한 고지 혹은 알림의 의무에 국한되지 않는다. 환자가 이를 이해하고 처치에 대한 자발적 동의에 이를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말 그대로 ‘설명’을 제공했느냐가 기준이다. 사전적 의미로 설명은 ‘어떤 일의 내용이나 이유 따위를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한다는 것이다. 설명은 청자가 전제된 개념이며 설명이 충분한가 아닌가의 판단은 화자가 아니라 청자가 하는 것이다. 의료인은 환자가 정보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다양한 방법에 응해야 한다. 당연히 질문에 답해야 하고 요구가 있으면 근거자료도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직업 공무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현대 민주정에서 공직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설명의 의무가 부여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들은 시민들에게 포괄적인 설명의 의무를 지며, 시민은 공직자들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이로부터 등장하는 것이 공공정보공개의 의무와 시민의 알 권리 개념이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원자력안전 정보공개 및 소통에 관한 법률’, 국회·법원·헌법재판소의 ‘정보공개규칙’ 등은 공직자들이 져야 하는 설명의 의무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정보공개법은 1조에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공개 청구 및 공공기관의 공개 의무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선출직 공직자에게 설명의 의무는 존재론적 근거로 내재된다. 대의민주정에서 대표는 책임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자신을 선출한 시민들에게 책임을 지기 때문에 대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책임은 크게 두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설명과 답변의 의무이고 다른 하나는 제재나 통제에 순응할 의무다. 후자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른 징계나 해임 절차에 협조하고 결과에 순응할 의무로, 탄핵 등의 절차도 있지만 다음 선거에서 시민의 지지 철회로 공직을 박탈당하는 제재도 포함된다.
그런데 법적 제재나 시민적 통제의 전제가 되는 것이 설명의 의무다. 선출 공직자가 설명과 답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시민적 제재가 행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출직 대표가 져야 하는 설명의 의무 역시 의료인에게 부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보 고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직자가 스스로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말하고 싶은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은 설명의 의무와 상관이 없다. 시민이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듣기를 원하는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 설명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또한 설명의 의무는 청자의 이해를 전제로 한 개념이며, 선출 공직자가 감당해야 하는 설명의 의무는 시민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시민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무한히 반복해서 답변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이 의무의 내용이다.
세밑에 이 당연한 이야기를 구구절절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가십거리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중대한 문제이기에 쓴다. 2022년, 대한민국의 모든 시민들이 우리 헌법이 규정한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