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리 | 대구대 조교수
권선징악은 이제 할리우드 액션물에서도 보기 힘든 결말이건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복수형 ‘진실들’은 아직도 어렵다. ‘정의’와 ‘불의’의 스펙트럼이 문득 넓어진 느낌인가 하면, 사안의 경중도 내가 어디에 서 있냐에 따라 달라진다. 매우 정교한 모양새로, 영원한 강자도 완전한 약자도 없다. 모두가 분열되고 파편화되어 있다면 대체 누구와 어떻게 연대하나 좀 절망스러워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의 최애 식당에서 배식을 감독하는 아주머니는 내게 도끼눈을 뜨고 돈가스를 세 조각만 가져가라 고래고래 외치는데, 내 앞의 노교수에겐 아무 말 않는다. 억울하다. 그런데 또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반찬 투정을 하며 속닥속닥 아주머니팀의 노동을 모욕한다. 숟가락을 뺏고 싶다. 내 마음속에 폭풍우가 두차례 일 동안 평화로이 식사를 마친 노교수는 유유히 그 장면을 떠난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움직이는 우리 할아버지와 잠깐 장 구경을 갔더니 어떤 아이가 외계인을 발견한 듯 뚫어져라 쳐다본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는 자신의 건강한 눈이 권력임을 잘 안다.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길 주저하시던 이유를 그제야 짐작한다. 일과 육아에 너무 힘들다던 ‘정규’ 교사가 ‘비정규’ 교사들의 시위에 혼잣말로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보지’ 한다. 머리가 핑 돈다.
처음 시집갔을 적 외할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불을 때야 했다고 한다. 모두가 잠든 때에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아궁이의 불씨를 살려내고 밥을 짓는 건 어린 할머니의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여동생과 사이가 각별했는데, 할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자게 해주기 위해 고모할머니는 먼저 나와 불을 지펴놓곤 했다. 할머니는 고마워서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 모든 걸 다 해놓으려 했단다, 의좋은 형제처럼. 그동안 뜨끈한 아랫목에서 쿨쿨 자고 있었을 청년 할아버지와 대가족을 생각하면 부들부들한다. 할머니에게 왜 그 임무를 하늘이 준 것처럼 순순히 받아들였냐 캐물을 순 없지만, 과연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왜 연대의 미담은 늘 전복을 좌절시키고 약자들의 약자성만 강화할 뿐 그 순간의 강자들 그리고 그들의 지독한 결속력과 허술한 논리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는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유학생 충원이 불안정해지고 대학 재정이 어려워지자 시장 원리에 입각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벚꽃도 남쪽보다 보름 늦게 필 뿐 안 피진 않을 텐데, 서로의 ‘위치’와 ‘이해’가 영 다른 양 모른 체다.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스스로 학문공동체를 꾸려나가도 모자랄 판에 교수들은 종횡으로 나뉘어 있을뿐더러 학생들도 분교니 성골이니 뿔뿔이 흩어져 연대하지 않는다. 그 틈에 득세하는 건 보이지 않는 그 손. ‘뭐든’ ‘열심히’ ‘잘하는’ ‘착한’ 학생들의 소중한 생의 의미를 단지 ‘정규직 취직’과 ‘결혼’으로 축소, 감금해내고 마는 그 힘이다. 결국 대학은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사람들, 질문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내 체제의 충실한 톱니바퀴가 되려나. 자본주의 정신은 모든 것에 깃들어 우리를 갈라놓는다더니 과연 그 무심한 치밀함에 등골이 오싹하다.
하지만 ‘우리’라고 속수무책은 아니다. 집정리를 하다 보니 그간 스크랩해두었던 기사가 한 가마니였다. 강렬한 삶의 기록들과 사회적 고민의 흔적들이었다. 모르긴 해도 곳곳에서 제각각인 마음들도 그렇게 지면을 통해 이어져 있었을 거다. 절대고독의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의 순간에도 우리는 은은히 빛나는 별자리처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어디엔가 이 외로움을 함께하고 뜻을 나누는 이들이 조용히 그러나 열렬히 응원하고 있음을 알아주길 부탁드리며, 새해엔, 세상의 모든 부글부글하는 우리들, 어떤 공동체를 향하여 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