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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거수기 이사회’ 종언 판결 / 곽정수

등록 2022-01-03 14:11수정 2022-01-04 09:49

법률전문매체인 <법률신문>이 선정한 ‘2021년 주요 판결’ 중에서 기업 담합행위에 대해 이사의 책임을 잇달아 인정한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이 당당히(?) 1위에 올랐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유니온스틸(현 동국제강)의 소액주주가 장세주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환송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9월 경제개혁연대 등 소액주주가 대우건설의 이사 10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 항소심에서 대표이사에게만 배상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내·외이사 10명 모두에게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앞서 두 회사는 각각 강판 담합과 4대강 사업 입찰 담합으로 공정위로부터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법원은 이사가 중대한 위법행위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등 감시·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인정했다. 담합을 사전에 몰랐다는 변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이 그동안 이사의 책임을 묻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대한 변화이다.

그동안 회사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총수를 포함한 경영진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을 제대로 못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사의 책임을 엄격히 묻게 되면 ‘거수기’ 이사회와 이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법원이 결정한 손해배상액이 실제 손해액의 일부에 그치는 등 아직 개선할 점이 있다. 하지만 벌써 올봄 주주총회를 앞두고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고위 관료 출신의 한 사외이사는 “계속 사외이사를 맡을지 고민”이라면서 “만약 한다면 위법행위를 막을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을 요청하고, 이사회 안건에 반대할 때는 꼭 근거를 남기려 한다”고 말했다.

재벌은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할 때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내세웠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최태원 SK 회장이 SK㈜ 대신 실트론 주식을 인수한 것에 대해 공정위가 부당한 사업 기회 제공이라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사회는 큰 이익이 예상되는 사업 기회를 총수에게 양보하는 것을 미리 알고서도 정식 안건으로 다루지 않았다.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의 제2기 위원장에 이찬희 전 대한변협 회장을 선임했다. 삼성이 준법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준감위는 법적 권한이 없는 임의 조직에 불과하다. 법적으로 준법경영은 이사회의 책임이다. 그동안 삼성에서 뇌물 공여, 불공정 합병, 분식회계 사건이 줄줄이 터진 것은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거수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준감위를 열개 만든들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경제개혁을 위해 공정시장위원회를 만들었다. 공정시장위가 발표한 ‘주식시장 개혁 방안’에는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한다는 이사 의무 강화 방안이 포함됐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의 공정경제’를 대선 슬로건으로 내걸겠다고 밝혔다.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거수기에 그치는 이사회와 이사는 더는 견디기 힘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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