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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아이 빌리브 / 정혁준

등록 2022-01-12 13:34수정 2022-01-13 11:42

‘믿다’의 영어 ‘빌리브’(believe)는 ‘가볍게 하다’, ‘(부담을) 덜어주다’가 어원이다. 믿고 의지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빌리브’는 종교 용어로 주로 쓰이지만, 노래 가사에도 많이 들어간다. 미국 팝송과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운데 ‘빌리브’가 들어간 노래가 많다. 대중가요에서 ‘빌리브’는 사실과 다른 것을 믿고 싶을 때 자주 쓰인다. 예를 들면 연인과 헤어졌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걸 믿어달라고 할 때 나온다.

가수 이수영은 1999년 선보인 1집 앨범 타이틀 곡으로 ‘아이 빌리브’를 선보였다. 동양적 분위기에 이수영의 호소력 짙은 음색이 어우러진 노래였다. 이수영의 ‘아이 빌리브’는 이별한 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 같지만, 사실 사별을 다룬 노래다. 학창 시절 전학 가버린 첫사랑을 먼 훗날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첫사랑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 노래에서도 ‘빌리브’는 사실과 다른 것을 믿는다고 할 때 쓰였다.

신승훈은 2002년 낸 8집에 ‘아이 빌리브’를 담았다. 이 역시 이별 노래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으로 먼저 알려졌다. 이 노래는 제목이 달라질 뻔했다. 이수영의 ‘아이 빌리브’가 이미 나온 때여서 작사가가 제목을 달리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신승훈은 “전세계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단어가 있어야 한다”며 “이수영의 ‘아이 빌리브’가 있어도 해야겠다”고 작사가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 노래 역시 ‘빌리브’를 반복하면서 이별을 부정한다.

신승훈의 ‘아이 빌리브’가 최근 다시 화제가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가 지난달 2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였다. 다음날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올라온 44초 분량의 영상에는 김씨가 사과문을 읽는 장면에 신승훈의 ‘아이 빌리브’가 흘러나온다. 영상이 올라온 게시물 조회수는 100만회를 넘겼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퍼져나갔다. 김씨가 국민에게 사과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남편과의 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 이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김씨는 그 사과로 윤 후보와의 믿음은 더 공고해졌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한 국민의 믿음은 더 멀어졌을 듯하다.

정혁준 문화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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