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김원규 | 변호사·국가인권위 전 직원
부천에서 ‘이주민 법률지원센터 모모’라는 이름으로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동남아 출신 이주민들이 겪는 많은 생활상의 어려움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 3건을 소개한다.
사건1은 40살 남성 ㄱ씨의 임금체불 건이다. ㄱ씨는 2020년 ○○시에 있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임금 240만원을 1년 가까이 못 받았다. 근로감독관이 작성한 체불임금확인서를 가지고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앞서 그는 18년 한국에 와서 공장에 취업했는데, 일을 시작한 지 10일 만에 왼손 엄지를 제외한 4개 손가락이 모두 절단되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산재 요양을 마친 뒤 겨우 취업한 직장에서 임금을 못 받은 것이다. 서울△△지방법원에 조정신청을 했다. 조정 기일에 사장이 나와 한달 뒤에 지급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지만 석달이 지난 지금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다. 전화도 정지시켜버렸다. ㄱ씨는 체불임금 240만원을 아직도 못 받고 있다.
사건2는 29살 여성 ㄴ씨의 교통사고 건이다. ㄴ씨는 ××시에 있는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동남아 출신 사람들은 전기자전거를 즐겨 타고 다닌다. ㄴ씨는 사고가 나던 날 아침 자전거를 타고 동네 시장길을 지나가던 중 갑자기 뛰어나온 초등학생과 부딪히고 말았다. 이 사고로 아이는 치아 2개가 빠지는 상처를 입었다. ㄴ씨는 현재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더해 이제 곧 비자 연장 심사기간이 되는데 행여 이번 교통사고 때문에 비자 연장 신청이 거부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런 사정으로 ㄴ씨는 상대방과 손해배상금 액수를 두고 밀고 당길 여유가 없다. ㄴ씨는 250만원 남짓 받는 월급의 3배에 육박하는 손해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건3은 29살 여성 ㄷ씨의 비자 변경 건이다. 국제결혼을 한 언니 초청으로 한국에 온 ㄷ씨는 인터넷으로 자신을 미혼이라고 소개한 남성을 만나 사귀던 중 임신을 하였다. ㄷ씨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 그 남성은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낙태를 죄악시하는 종교의 나라에서 태어난 ㄷ씨였기에 낙태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혼자서 아이를 출산하였다. 아이는 소송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비자 문제였다. ㄷ씨의 비자는 취업이 안 되는 1년 기한의 비자여서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자부터 바꿔야 했다. 관할 출입국·외국인청에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체류기간도 길고 취업이 가능한 비자로 바꿔달라고 신청했으나 거부당하였다. ㄷ씨는 한달에 생계급여 등 120여만원으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방에서 아이와 단둘이 살고 있다. 현재 비자 변경 신청 불허가 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이주민들은 직장을 잡아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친척 초청 등 인간적 관계 때문에 한국에 온다. 그러나 이들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고 친척만 바라보고 있는 존재도 아니다. 이들도 생활인으로서 겪는 온갖 일들을, 그것도 한국인들보다 훨씬 힘들게 겪는다. 우리나라 이주민 정책은 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되 장기거주를 허용하지 않고 본국으로 돌려보내거나 국제결혼으로 한국인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이주민 정책의 기본 방향이 이러하니 이주민들이 낯선 환경에서 겪는 문제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크게 미흡하다. 짧아도 6개월 이상 걸리고 요건도 까다로운 현행 임금체불 구제제도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족하므로 일하고 돈 못 받은 것이 확실하면 신속하게 임금을 지급해주는 임금체불 보험제도가 필요하다. 작은 교통사고만으로도 생활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도록 교통사고 보험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 한국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한국인 가정의 구성원 여부를 따지지 말고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이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은 이주민들이 생활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완화하는 데 필요한 정책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