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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미래] 총체적 불평등 시대

등록 2022-01-23 16:24수정 2022-01-24 08:26

‘올해의 인물’로 뽑힌 일론 머스크를 표지 사진으로 쓴 <타임> 2021년 마감호.
‘올해의 인물’로 뽑힌 일론 머스크를 표지 사진으로 쓴 <타임> 2021년 마감호.
뉴노멀

미래

곽노필

콘텐츠기획팀 선임기자

“지구의 삶과 지구 밖의 잠재적 삶에 대해 머스크만큼 영향력을 지닌 사람은 없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기차와 우주산업의 판도를 바꾼 일론 머스크를 2021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최고 억만장자가 된 그를 향해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이 몇달 전 이런 제안을 했다. “당신의 돈 60억달러면 4200만명을 살릴 수 있다.” 머스크 자산의 3%만 떼도 4200만명을 굶주림에서 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비즐리의 제안엔 세계 불평등의 한 단면이 잘 드러나 있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세계엔 세 유령이 떠돌고 있다. 팬데믹과 기후변화, 불평등이다. 팬데믹 유령은 인류를 멈춰서게 했고, 기후변화와 불평등이라는 유령은 인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총체적 위력은 기후변화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불평등이다.

소득에서부터 자산, 건강, 교육, 주택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격차가 커지며 대다수의 삶을 압박하는 세상이다. 운명의 불평등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문제의 출발점은 부의 불평등이다. 돈이 많은 자가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근대 복지사회의 상징과도 같던 이 말은 이제 불평등 사회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평등은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음에도 행복 순위가 낮은 주된 이유다. 욕망과 분노를 부추기는 불평등의 등쌀에 행복한 마음이 들어설 자리는 좁디좁다. 중간이 사라지고 양극단만 남는 세상에 평균은 의미가 없다.

부의 불평등 심화엔 두 개의 화수분이 있다. 자산소득과 세계화다. 덩치 커진 자본을 굴려 얻는 소득이 노동소득보다 커졌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면서 부자의 파이도 그만큼 커졌다. 첫 조만장자가 탄생할 것이라는 우주산업, 무한의 가상세계를 꿈꾸는 메타버스는 불평등의 무대를 더욱 확장해갈 것이다.

부의 세습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이미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누구 자식으로 어디서 태어나서 자랐는지가 개인의 삶을 좌우하는 게 현실이다. 역대 최고의 부를 축적한 베이비부머들이 속속 은퇴하면서 역대급 대물림 시대도 오고 있다.

어떻게 고리를 끊을까? 인류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 역사가 없다. 발터 샤이델은 <불평등의 역사>에서 역사적으로 불평등의 벽을 허문 것은 폭력적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전쟁, 혁명, 국가 붕괴, 팬데믹 네 가지를 들었다. 세계불평등연구소는 불평등이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져 제국주의의 정점이었던 20세기 초반과 비슷해졌다고 분석한다. 당시 소득 불평등의 정점을 찍었던 유럽에선 전쟁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불평등 해소를 위해 파국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도를 완화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해법은 사실 간단하다. 지나치게 편중된 부를 거둬들여 나누면 된다. 세금으로 거둬 복지와 인프라에 쓰는 것이다.

억만장자들도 혼자 힘으로 부를 일군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첫 우주여행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지불해준 모든 직원과 고객에게 감사한다.” 그러자 합당한 세금을 내라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위기의 지구와 빈곤층을 놔두고 우주에 돈을 쏟아붓는 억만장자들을 바라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다. 불평등 완화에 성의를 보인다면 시선이 좀 부드러워질 것이다. 머스크가 비즐리의 제안에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노력들이 쌓여야 타협의 여지가 생기고 양극단 사이의 중간지대도 형성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미래를 위한 결정에 서로가 좀 더 쉽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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