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유럽에 알린 콜럼버스는 이후 10여년간 4차례 항로를 변경해가며 신대륙 탐험을 이어갔다. 콜럼버스의 배는 1503년 6월 마지막 항해 때 자메이카 해안에 좌초해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체류 기간이 해를 넘겨 길어지자 갈등이 생겨났다. 원주민들이 음식 지원 등을 끊자 콜럼버스는 당시 항해의 필수품인 천문 월력을 살핀 뒤 경고했다. “기독교의 신이 분노해 사흘 뒤 보름달을 없애버릴 것이다.” 예언대로 1504년 2월29일 밤 개기월식 현상을 목격한 원주민들은 혼비백산하고 넉달 뒤 스페인 구조선이 도달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예언은 종교와 신화에서 주인공들이 힘과 권위를 갖는 가장 일반적인 경로다. 미개 사회에서 주술사의 권력과 지위도 예언 능력에 기댔다. 인간의 본질적 특징에 대해 사람만 유일하게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간은 미래를 상상할 줄 알기에 불안해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범주적 사고와 인과적 사고를 통해 이성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능력을 발달시켜왔다는 주장이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인간 뇌는 일종의 예측기계로, 이 기계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팜컴퓨팅을 설립한 컴퓨터공학자 제프리 호킨스는 “예측은 두뇌가 하는 많은 일의 한 가지가 아니다. 예측은 신피질의 주된 기능이며 지능의 기반으로, 대뇌 신피질은 예측기관이다”라고 말한다.(<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 인간 두뇌를 예측기계로 보는 관점은 뇌과학과 컴퓨터공학을 활용해 인간 뇌가 지닌 예측 능력의 일부를 인공지능이 모방하도록 하기 위한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학의 태두 제임스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는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다”라고 말한다. 미래를 상상하고 불안해하는 인간 속성은 이성과 과학을 발달시키는 한편, 샤먼과 무속인, 도사, 법사의 활동 공간을 만들어냈다. 빅테크 플랫폼 기업과 인공지능, 우주개발을 둘러싸고 글로벌 생존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언 능력을 앞세운 현대판 샤먼들에게 자신과 공동체의 운명을 맡기려는 모습을 공당에서 목격하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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