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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초과학의 힘

등록 2022-01-26 18:14수정 2022-01-27 02:31

[숨&결] 김준 |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올해는 유엔이 지정한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국제 기초과학의 해’이다. 유엔은 기존에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 목표는 굶지 않는 삶, 건강한 삶, 성평등, 깨끗한 물, 기후 행동 등 다양한 범주를 포괄하고 있다. 상당수는 기초과학이 더 발전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들이기에, 기초과학을 향한 지지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기초과학의 해를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 기초과학이 기여하는 방식은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다 보니 그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기초과학은 분명 인류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히 기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응책을 마련한 과정은 기초과학이 기여한 가장 가까운 사례이다. 2019년 초겨울, 원인 모를 폐렴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확인됐다. 원인은 금세 밝혀졌다. 디엔에이(DNA) 등의 정보를 확인할 때 널리 쓰이는 염기서열 분석 기법 덕이었다. 이렇게 확인된 코로나바이러스는 해당 감염증의 원인으로 확정됐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진단법이 빠르게 개발됐다. 연구실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피시아르(PCR) 관련 기법이 그 기반이 됐다. 감염증을 예방하기 위한 백신도 빠르게 개발됐다.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확보된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아르엔에이(RNA)를 백신으로 사용하고자 노력한 수십년의 역사 덕분이었다. 한때는 상용화되지 않은 미완의 방법론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은 이제 전세계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이 모든 일이 기초과학만으로 이뤄진 일은 결코 아니지만, 기초과학과 관련 연구는 분명 아주 오래전부터 이 모든 일의 기반을 닦아냈다. 염기서열 분석과 피시아르 기법은 현장에서 쓰이기 수십년 전부터 연구실에서 사용되며 생물학의 기초가 되었다. 이 매력 넘치는 실험법을 쓰고자 하는 연구자는 순식간에 늘어났고, 수요만큼이나 관련 기법도 빠르게 발전했다. 이는 금세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실험을 창출하며 새로운 발전을 추동했다. 기술만 발전한 것도 아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실험에 필요한 시약과 장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가 구축됐고, 관련 전문 지식을 숙달한 사람들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이렇게 오랜 시간 키운 역량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미지의 감염원에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됐던 것이다.

기초과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며 인류가 이해하고 답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주고 있다. 이제는 유전자 하나가 아니라 수십만명의 디엔에이 정보를 뜯어볼 수 있게 됐고, 이는 질환 정보와 합쳐져 유전병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사람이 아닌 작물에도 적용되고 있다. 생산량을 늘리고 새로운 작물을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이나 몇몇 작물을 넘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디엔에이 정보를 그러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거대과학도 진행 중이다. 이는 지구의 수많은 생물이 진화한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이들이 기나긴 시간 동안 환경 변화와 미생물에 맞서 확보한 온갖 유전자원에 관한 정보도 제공할 것이다. 인류가 계속해서 뒤바뀌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초과학은 지금도 저변을 넓히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대통령 후보를 향한 질문도 쏟아지고 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는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네트워크(ESC)에서는 이런 과학을 해나갈 사람을 위한 정책에 대해 물은 바 있다. 기초과학은 당장 돈이 되질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야 성과를 볼 수 있다. 느리지만 탄탄하게 기초과학이 그 기틀을 마련해나갈 수 있도록 정부의 관련 정책도 단단하게 뿌리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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