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등 사회 각계 원로들은 지난달 28일 “반역사적·반민주적 세력이 시대를 전복하려 들고 있다”며 “2017 촛불시민이 다시 나서서 투표로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2017년 2월18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편집국에서] 신승근 | 정치에디터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등 민주개혁정부를 염원하는 원로시민모임 인사 130명은 설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달 28일 “반역사적·반민주적 세력이 시대를 전복하려 들고 있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오늘이 있도록 헌신한 2017 촛불시민이 다시 나서서 투표로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대선이 30여일 남았는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본인·부인·장모 의혹에도 여전히 강세다. 걱정이 태산 같을 것이다.
사실 촛불시민이 윤석열 후보를 안 찍을 이유를 찾는다면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러나 2030 남녀 갈라치기, 중국 혐오 부추기기, 남북대결주의 등 그의 시대착오적 인식과 언행, ‘여성가족부 폐지’ ‘사드 추가 배치’처럼 몇 글자로 뜻을 밝히는 단순함에도 그의 지지율이 유지되는 건 정권교체 열망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은 아쉽고, 안타깝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권을 맡겼지만 실망은 깊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취임사처럼 불평등과 불공정 해소를 기대했다. 하지만 성적표는 초라하다. 투기세력에 패배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부동산 정책은 문재인 정부 최대의 망작이 됐다.
정치 개혁도 내세울 게 없다. 선거제도 개혁은 배신의 상징이 됐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하려 보수 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었을 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맞서지 않고, 되레 그 대열에 합류하며 자신을 합리화했다. 진보 진영의 파이를 함께 키워야 할 정의당의 뒤통수를 쳤고,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지도부를 물정 모르는 무능 집단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4·15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을 얻었지만, 케이(K)방역의 성공신화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압승을 거뒀지만, 그 뒤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민주당 소속 단체장의 성폭력으로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치러졌지만 민주당은 당헌·당규를 바꿔 후보를 냈다. 이번에도 구실을 내걸어 정당화했다. 이제 와서 송영길 대표가 서울 종로 등 민주당이 유발한 3개 국회의원 재보선 지역에 무공천을 약속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속된 말로 쫄리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게도 구럭도 다 잃은 뒤늦은 행동이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광화문 시대’는 또 어떤가. 결국 윤석열 후보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취임 첫날부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집무를 시작하겠다고 다시 공약한다. 대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각설이 공약’이 된 느낌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높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라는 허울 좋은 미망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절망한 내일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원로시민모임의 지적을 깊이 새겨야 한다.
‘윤석열 후보는 우리 민주당 정부의 어두운 유산입니다. 우리의 오만과 내로남불의 반사효과입니다.’ 송영길 대표의 이런 고백이 그나마 엄정한 진단이다. 어두운 유산이 최고권력을 쥐고,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되려 한다. 만약 현실화한다면 검찰개혁을 소명으로 삼았던 촛불정부 최악의 아이러니가 될 것이다. 그를 검찰총장으로 초고속 부양한 문 대통령의 과오로 기록할 수밖에 없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문재인과 민주당 처음부터 이 사회를 제대로 바꿀 청사진과 준비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힘, 수구세력에 의해 심판받아서는 안 됩니다. 문재인 싫다고 상황에 냉소하면서 수구세력의 쿠데타에 동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선의 시대정신? 매우 안타깝지만 그런 거 논할 단계 지났습니다. 쿠데타 막아야 합니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쿠데타로 보는 그의 시각엔 논란이 따를 것이다. 쿠데타라 할지라도 그것을 막기 위해선 국민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 원로들의 요구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처절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는 왜 이재명이어야 하는지 또렷하게 드러내야 한다. “막힘없이 말은 잘하는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들, “개천 용이라는데 노무현처럼 개천 냄새가 안 나고 기득권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촛불시민이 있다는 걸 이 후보는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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