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집권당에 비판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비판은 국정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과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지나친 현실왜곡은 북측의 오판을 초래하고, 국내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할 뿐 아니라,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 집권 뒤 합리적 정책결정을 제약하는 족쇄가 될 것이다.
통일부·외교부·국방부는 지난해 12월23일 서울 남북회담본부에서 2022 정부 업무보고 합동브리핑을 개최했다.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 최영준 통일부 차관, 유동준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세종연구소 이사장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 수년 사이 불거진 현상 중 하나는 객관적 사실과 여론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주관적 억측이 진실을 압도하곤 한다는 점이다. 미국만 해도 기후변화 불신론, 백신 반대론, 미 대선 부정선거론 등 온갖 음모론이 정부나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의 발표, 사법부의 판단보다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흐름은 정책사안에 대한 건전한 논의를 저해하고 합리적 정책수립을 어렵게 만든다. 한국은 대선 정국이다. 정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고 이 같은 현상은 한층 두드러진다. 1월24일 발표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외교안보 공약이 그렇다. 공약이란 원래 후보의 주관적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문제 삼을 게 없지만, 그 근거가 되는 팩트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민주당 정권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완전한 실패” “유명무실화한 한국형 3축 체계” “지난 5년간 무너져 내린 한-미 동맹” 같은 전제가 그렇다.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상이 기대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유를 불문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는 실현되지 않았다.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표류 해양수산부 직원 사살, 2022년 1월 한 달에만 7차례 이뤄진 북측의 미사일 발사 등은 큰 오점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완전한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이전인 2010~17년 기간 중 북측은 27차례의 침투와 237차례의 국지도발을 감행했다. 반면 2018년 남북군사합의 이후 비무장지대에서 대남침투와 국지도발은 2020년 감시초소(GP) 총격사건 외에 한 번도 없었다. 이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남북의 물리적 충돌과 인명 손실이라는 결정적 파국이 관리 혹은 통제돼 왔음을 뜻한다. “유명무실한 3축 체계”라는 비판도 문제시된다. 2017년 평양의 공세적 행보 이후 문재인 정부는 북측의 핵미사일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왔다. 3축 체계의 핵심인 요격능력(한국형 MD)의 향상을 위한 패트리엇 성능개량, 천궁 Ⅱ, L-SAM, 장사정포 요격체계 획득에 총 8조28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공세적 방어의 핵심축을 구성하는 전략타격자산도 크게 확충되었다. F-35A 스텔스 전투기, 현무 Ⅱ, Ⅲ 함대지 탄도 및 순항미사일, 타우루스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확보하는 데 무려 18조1100억원을 배정했다. 감시정찰 능력 또한 현저하게 향상됐다.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와 군 정찰위성 획득, 신호정보수집기 백두체계 능력 보강 등에 4조4700억원이 쓰였다. 핵과 미사일 방어를 위해 30조8600억원을 투입하면서 한-미 공조를 긴밀히 해왔음에도 유명무실을 단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한-미 동맹만 해도 그렇다. 북핵 문제 해법의 순서나 대중 견제 협력의 수위 등에서 한-미 간에 부분적 견해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듯 민감한 쟁점에서 최소한의 이견도 없다면 이는 정상적인 국가 간 관계일 수 없다. 반면 한-미 동맹의 큰 틀은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군사동맹을 넘어 경제동맹, 기술동맹 등 포괄 동맹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윤 후보는 “훈련도 연습도 안 하는 군대”라는 말로 연합방위태세를 평가절하하지만,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한 2018년 하반기 을지연습 미실시를 제외하고는 지난 5년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나 연습을 중단한 적이 없다. 심지어 평창 겨울올림픽이 있었던 2018년에도 독수리 훈련을 4월로 미뤄 실시했다. 특정 기간 집중적으로 실시되던 야외기동훈련의 규모가 조정돼 연중 분산실시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으로 시작된 것이었고 이후에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동맹 와해라는 주장이 가능할까. 사실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목표로 삼았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연합훈련과 연습을 먼저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한-미 관계에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남북 간 합의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는 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정치의 바람이 거세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집권당에 비판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비판은 국정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과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지나친 현실왜곡은 북측의 오판을 초래하고, 국내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할 뿐 아니라,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 집권 뒤 합리적 정책결정을 제약하는 족쇄가 될 것이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팩트는 팩트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굳건한 국가안보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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