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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급식 노동자의 하루 (상) / 권윤숙

등록 2022-02-09 17:45수정 2022-02-10 02:31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 기름 솥에서 음식을 튀기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 기름 솥에서 음식을 튀기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권윤숙

학교급식실 조리사

18리터짜리 식용유 세 통을 솥에 붓고, 물 반죽한 고기를 2인1조로 튀겨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기로 숨이 턱 막혀온다. 문제는 대량으로 튀겨낸 탓에 뜰채로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고기다. 그럴 땐 손으로 일일이 떼어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손이 익어가는 느낌이다.

‘바스락바스락’ 누렇게 변한 포플러 나뭇잎을 밟으며 걷는다. 물웅덩이에 운동화가 젖어 ‘내일은 레인부츠를 신어야지’ 다짐했다가, 막상 부츠를 사려면 아이들 물건부터 눈에 밟혀 끝내 장만하지 못하기 일쑤다. 경력 8년의 출근길 모습이다.

원거리 근무지에서 5년을 보내고, 근거리로 전보를 오면서 뚜벅이가 되었다. 뚜벅이의 장점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각 걱정 없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이다. 그러나 모든 직장인이 그러하듯 준비 과정이 있기에 오전 7시40분에 출근한다. 47살의 나는 경력 9년 차가 되었지만, 만년 막내다.

도착하면 네 명의 선배님이 벌써 소독수를 만들고, 건조된 도구들을 정리하고, 물을 받고 있다. 아이들을 다 키운 50대 선배들은 고등학생 두 명을 키우는 후배를 배려해 내 몫까지 해주고 있다. 뒤늦게 하얀 작업복에 모자를 쓰고, 비로소 소유하지 못했던 장화를 신어본다. 예쁘기까지 한 분홍색 장화는 200도의 끓는 기름에도 견딜 수 있는 미끄럼 방지 장화다. 열탕한 식기들이 소독고에서 잘 건조되었는지 확인하고, 배식차, 덤웨이터(식기 운반용 소형 승강기) 등 손이 가는 모든 곳에 소독액을 뿌려준다. 오늘 쓸 도마와 칼은 소독물에 담가둔다. 그리고 곧 오게 될 식재료 받을 준비까지 해둔다. 물을 한 잔씩 마시고, 부상 방지를 위한 체조를 시작하면서 하루를 연다. 그러나 나는 물 한 잔을 다 마시지 않는다. 아침도 잘 먹지 않는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60살인 선배님도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일을 시작하면 화장실에 가기 어렵기에, 최대한 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내년에 정년을 맞는 선배 이외에도 또 다른 두 명의 선배가 정년을 앞두고 있다. 우리 다섯 명은 600명이 넘는 학생의 급식을 맡고 있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다. 정식 명칭은 조리사, 조리실무사이다. 우리는 음식을 조리해야 하기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출근을 한다. 그래서 어제의 노동 강도를 다음날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푸석한 얼굴, 퉁퉁 부은 손,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통증….

“손은 괜찮아?”

몇 해 전, 음식물 쓰레기통에 손이 깔리는 사고를 당한 한 선배는 고질병이 되어버렸는지 테이핑을 하지 않으면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일명 챔피언 벨트라고 부르는 복대는 허리가 아픈 맏언니의 것이다. 그것은 얼마 전 방광염으로 치료를 받았던 선배에게 넘어갔다. 나도 허리가 아프지만 차마 선배들 앞에서 말하기가 미안해서 자석 파스 몇 개 붙이고 출근했다. 음식을 조리해야 하는데, 일반 파스는 냄새도 나거니와 오늘처럼 탕수육을 하는 날엔 화끈거리는 파스가 튀김 열기를 몇 배로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검수하고 전처리실에서 씻고 다듬고, 밑간을 해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조리실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음식 조리에 들어간다. 18리터짜리 식용유 세 통을 솥에 붓고, 물반죽한 고기를 2인1조로 튀겨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기로 숨이 턱 막혀온다. 모자 속에 두툼하게 말아 넣어둔 종이타월 덕에 다행히 땀이 기름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문제는 대량으로 튀겨낸 탓에 뜰채로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고기다. 그럴 땐 손으로 일일이 떼어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손이 익어가는 느낌이다. 고무장갑 속에 있는 면장갑은 이미 땀으로 젖어 기름 열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갑자기 맏언니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땅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핑 도네. 속도 메스껍고.”

우리는 체했나 싶어 소화제를 먹이고, 손가락을 따고, 아니면 더위를 먹었나 해서 에어컨 앞으로 데려가 찬 바람을 맞게 했다. 그동안 다른 선배가 와서 고기를 넣어주었다. 잠깐 혼자 넣으면서 튀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겠지만, 학교 급식은 교차오염 때문에 그리해서는 안 된다. 조리된 음식을 최대 두 시간 이내에 배식하는 이유도 식중독 예방을 위해서다. 그렇기에 우리는 원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살인적인 인원 배치 기준 탓에 누구 하나 삐끗했다가는 제시간에 급식이 못 올라가는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맏언니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도 다시 돌아왔다.

나도 정신없이 튀김을 하느라 잊고 있던 통증이 조리가 끝나니 올라왔다. 이번 여름엔 가슴 밑이 헐어서 고생했다. 땀띠야 달고 살지만, 점차 기후가 동남아처럼 변해가는 건지 여름에 튀김 요리만 하고 나면 헐어버렸다. 수건으로 덧대어 견디지만, 일을 하다 보면 수건마저 젖어 쓰라림이 다시 시작됐다. 이 고통을 끝내는 길은 방학을 이용해 쉬는 것뿐이다. 그러나 방학을 하면 일당제로 바뀌면서 월급이 나오지 않아 생계 걱정이 시작되니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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