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1987년 12월.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후보 3파전으로 불꽃 튀던 초겨울, 13대 대통령 선거를 열흘쯤 앞둔 날이었다.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회’ 발족식 당일. 나는 그 행사의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어느 대학신문의 편집국장이던 때였다. 식이 펼쳐지기로 한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에는 맵찬 바람을 맞고 선 깃발들이 세차게 펄럭였다. 재학생들 대부분은 유력 대선 후보들의 연설을 듣기 위해 옥외 유세장으로 빠져나갔다. 텅 빈 교정에는 ‘무려’ 60여명도 채 안 되는 ‘전국’ 대학신문 기자들만 듬성듬성 무리 지어 서 있을 뿐이었다.
축사를 고 송건호 선생에게 부탁드렸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하고, 1988년에 <한겨레>를 창간하시게 되는 바로 그분을 막무가내로 초빙한 것이다. 이윽고 축사 낭독 차례가 되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송 선생은 외투를 벗어 등받이에 걸어놓더니 속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내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사회자 마이크 스탠드 곁에서 나는 보았다. 칼바람이 민주광장에 휘몰아칠 때마다 부들부들 다리를 떨면서 추위를 견디던 한사람의 노신사를. 외투 입기를 마다한 채 의자에 꼿꼿이 앉아 발족식이 끝나는 시점까지 학생들의 발언을 경청하던 옆모습을. 이 행사 참여 뒤 송건호 선생은 그만 독감에 걸려 일주일간 앓아누웠다는 뒷얘기를 들었다.
고 김정환 교수는 페스탈로치 연구의 대가였다. 일본어, 영어, 독일어 자료를 넘나들며 평생 ‘인간주의 교육학’을 탐구했다. 대학원 수업을 정오 무렵 마치면 제자들과 학교 뒷산을 함께 오른다.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근처의 허름한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나눔으로써 ‘진짜 수업’이 끝난다. 김 교수는 시야에 잡힌 풀 한포기, 꽃 한송이에도 애정을 가진다. 내가 썼던 날림공사투성이 논문에 대해도 세심한 논평을 잊지 않았다. 다정하면서도 엄정하게 스승과 제자의 격을 지키기. 내가 배운 자세였다. 나는 고 김정환 교수를 학문적 업적으로 인해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준엄한 역사 인식, 몸으로 보여준 행동들이 종합적으로, 선명하게 내 신체에 각인되었기에 잊지 않는 것이다.
감각 자극이 우리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스승의 음성, 몸짓, 눈빛, 고뇌, 탐구 정신, 대화, 필체, 악수나 어깨동무, 열정, 청취 능력, 진실했던 자세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웠다. 교육 상황에서 대면은 비대면보다 훨씬 힘이 세다. 증강현실과 메타버스, 엔에프티(NFT)가 보편화되어갈 이 시대에 웬 복고풍 ‘접촉 자극’ 타령이냐고 타박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파워포인트 제작, 이미지와 영상 자료, 타이포그래피 분야에 아주 민감하다. 강의 슬라이드의 논리적 구성과 스토리텔링 효과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전달 요소를 배치한다. 또렷한 전달력을 이점으로 활용해 온라인을 통한 강의, 튜토리얼, 포럼, 세미나를 별 탈 없이 수행해왔다.
그런데도 비대면 수업을 마치고 날 때마다 허탈감으로 마음이 진공 상태가 된다. ‘실물 강의실’에서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는 ‘수업의 아우라’를 온라인에서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 김수영이 <사무실>에서 노래한 것처럼 ‘청결한 공기조차 어즈러웁지 않은 것이/ 오히려 너의 냄새가 없어서 심심하다’. 작년 말 어느 대학에서 요청한 온라인 특강을 맡아 진행했다. 60~70명쯤 되었던 참여 학생들의 줌 화면 가운데 70%가 까맣게 꺼져 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왜 내 강의를 듣게 되었는지, 내 말이 공감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랜선 저 너머에 존재하는 화면 속 ‘검은색 격자’들이 내게 ‘시계 제로’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정보 전달자로 온라인 유령처럼 떠돌기를 거부한다. 나는 정보나 지식, 경험의 단순 소유자가 아니다. 내 의지와 열정을 버무려서 미지의 삶을 헤쳐나가고 싶은 실존 인물이다. 어떤 방향이 옳은지, 최선인지 잘 모르겠기에 함께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을 기다린다. 만남은 교육에 선행한다. 마르틴 부버의 이 언명은 진실이다. 교육은 인간 사이의 만남을 해석하고, 그것의 의미를 찾기 위한 ‘명찰 붙이기’ 행동이다. 비대면 상황에서 아직 스승이 필요하다면 교사와 학생이 인격적으로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지 더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그래야 희미한 단서라도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