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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악플 피해자의 죽음

등록 2022-02-09 18:30수정 2022-02-10 02:32

[숨&결] 배복주 | 정의당 부대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개인의 고통과 슬픔은 어떠했을까. 김인혁 배구선수와 비제이(BJ) 잼미(조장미)씨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은 모두 악플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인혁씨는 남자가 화장한 것처럼 보인다며 성소수자라고 의심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악플에, 잼미씨는 여초 커뮤니티의 말을 사용했다며 페미라고 몰아붙이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악플에 시달렸다. 이는 두 사람이 사망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너무나 참담하다.

지난 몇년간 이러한 죽음을 수차례 마주했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애도했다. 악플 피해자들의 죽음이 남긴 사회적 과제도 공론의 장에서 토론되었다. 그래서 국회에서 법 개정을 시도한 적도 있고 포털사이트와 언론에서도 악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변화는 미미하고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에도, 살면서 나의 장애, 신체, 외모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말과 글을 들었고 보았다. 장애로 인해 불행과 무능을 암시하는 말로 동정받거나 배제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럴수록 ‘아니다’라고 증명해야 하는 몫은 나에게 있었다. 내가 넘어야 할 사회적 장벽은 너무나 높았고 허물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좌절한 적이 꽤나 있었다.

내 탓이 아님을 알면서 나는 내 탓을 한 적도 많았다. 장애와 연결되기도 하는 신체에 대한 공격, 여성이라서 겪는 외모에 대한 비하는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할 때 언론 기사 댓글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인격을 모욕하고 욕설을 하고 혐오하는 댓글을 보면서 상처를 받았다. 감정은 우울해지고 자신감은 떨어지고 자존감도 낮아지면서 자꾸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일상에서 그 말이 기억나고 실체도 없는 두려움이 생겨 불안해졌다. 장애인이자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내가 믿는 정의를 위한 활동이 누구에게 어떤 위협이 되거나 고통을 준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른 몸으로 살아가고 있고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다르다’는 것이 공격받거나 혐오를 받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모욕하고 혐오하는 행위는 정당하지 않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무리를 지어 악플을 달고 조롱하는 행위는 비겁하다. 이러한 행위를 허용하고 쉽게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책임을 묻고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집단화된 몰인지의 심각성을 모두가 열심히 말하고 표현해야 한다.

악플 피해자는 불안하고 두렵기에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숨어버리거나 죽는다. 이런 상황이나 구조는 정의롭지 않다. 가해자가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고 유통하는 사업자가 책임있게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게 정의롭다.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 공간은 소중하다. 정보를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고, 즐거움을 나누기도 하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상의 일터이기도 하다. 차별과 혐오의 공간보다는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온라인 공동체가 유익하다. 때론 서로 간에 이슈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격렬하게 토론을 할 수도 있지만 차이를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하면 된다. 그것이 비폭력이다.

더 이상 이처럼 안타깝고 참담한 죽음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심정이다. 나를 포함해서 악플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악플러가 아닌 악플 피해자를 지지하는 연대를 바란다. 수많은 피해자의 죽음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나마 그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평화와 안전을 기원하면서 마지막 칼럼을 마감한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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