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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석열과 박근혜

등록 2022-02-09 18:31수정 2022-02-10 09:38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22일 세종시 비오케이(BOK)아트센터에서 열린 ‘세종시 선대위 필승 결의대회’에서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22일 세종시 비오케이(BOK)아트센터에서 열린 ‘세종시 선대위 필승 결의대회’에서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이주현 | 이슈부문장

보수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과 대선 후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박 전 대통령은 추종자는 많지만 친구가 별로 없다. 반면 윤 후보는 친구가 많다. 박 전 대통령은 모임에서 건배를 하고 나면 술잔을 입에 대지 않고 누군가에게 ‘흑기사’를 요청했는데, 윤 후보는 자타공인 애주가다. 박 전 대통령은 말이 짧다. 꼭 필요한 말 외엔 하지 않아서 침묵의 공간을 상대방이 채워야 한다. 윤 후보는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장황하다고 느낄 만큼 말을 아끼지 않는다.

리더십의 이력과 내용도 매우 다르다. 청와대 입성 전 정당 지도자로서 박 전 대통령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쪽박 찰 뻔한 당을 기사회생시켰고, 2011년 재보궐선거 때는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수렁에 빠진 당을 수습해 대선 승리의 길로 이끌었다. 대통령으로선 역대 가장 무능한 지도자였을지언정, 여의도 정치에 그만큼 능숙하고 또 선거에서 성과를 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반면 윤 후보는 지난해 6월29일 공식적으로 정치 참여 선언을 하기 전까지 한번도 여의도 정치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윤 후보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검사”라고 평한다. 앞뒤 안 재고 파헤치는 전형적인 강골 검사, 거칠 것 없이 호방한 ‘형님 리더십’으로 검찰조직 내에서 신망을 쌓았다. 박 전 대통령이 충성하는 대상은 ‘국가’로 치환되는 ‘아버지’인 반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후보에게 충성의 대상은 ‘정의’로 치환되는 ‘(검찰) 조직’이다. 더욱이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시절, 권력에 탄압받는 강직한 검사 이미지로 존재감을 키웠으니, 두 사람은 상극에 가깝다.

이처럼 너무나 다른 캐릭터임에도 최근 윤 후보에게선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대선 후보 시절 박 전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 나서서 발언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엔 입을 닫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이라고 확신했기에 그의 한마디는 늘 중요한 ‘말씀’으로 여겨졌고, 이에 기자들은 ‘측근’ 또는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돌려가며 해설 기사를 써야 했다.

윤 후보도 ‘한줄 정치’ 중이다.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극적으로 화해한 직후인 올해 초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적었다. 이어 설명과 해석, 찬성과 반대, 주장과 반론은 기자들과 누리꾼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윤 후보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여성부 폐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남녀를 나누지 말자”는 두루뭉술한 주장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한 것인지, 윤 후보는 4주 뒤에도 또 “사드 추가 배치”라는 여섯글자를 올렸다.

박 전 대통령의 ‘한마디 정치’와 윤 후보의 ‘한줄 정치’는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굵고 짧은 메시지는 지지자들의 신념을 강화시키고 반대자들을 자극한다. 한줄 정치는 갈등의 전선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여기에서 그치고 만다면 갈등의 해법에 대한 구체적인 목소리는 사라진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이런 폐해를 지적하면서 “시민들의 말에 개입하고 중개하는 메시지”로 돌아오지 않는 “정치적 말”은 “시민들의 충돌을 방치하고 심지어 즐긴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무책임하며 비겁하다”고 했다.

윤 후보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가 이재명 정부가 아닌 윤석열 정부여야 하는 이유’를 질문받자 “오죽하면 국민들이 저를 부르셨나.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더욱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다. 지난 3~4일 <한겨레> 의뢰로 실시한 케이스탯리서치 여론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에서 윤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자 중 “정권교체를 위해서 지지한다”는 비율이 64.8%나 됐다. 지지 이유가 “후보 개인의 자질과 능력”인 응답자는 오직 4.1%였다.

윤 후보로부터 정권교체의 열망을 확인하는 건 이제 충분하다. 정권교체를 넘어 윤석열 정부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달라. 최소한 투표일 전까지는.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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