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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등록 2022-02-13 18:23수정 2022-02-14 02:01

[서울 말고] 명인(命人) |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다. 사람마다 가정환경은 다 달라도 누군가 돌보지 않았다면 현재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직 젊더라도 누구나 생의 어느 시기엔 아플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언젠가는 늙는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우리는 언제든 돌봄이 필요하고, 다시 말해 언제나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단 얘기다.

그러나 돌보는 노동은 쉽지 않다. 그것은 상대방의 필요에 대해 매우 민감해야 하는 일이라서 반복적인 일이지만 기계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며,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감정과 내 감정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감정이 동원되는 일이고, 숙련된 사람이라도 돌보는 상대가 달라지면 또 처음부터 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노동이다. 게다가 돌봄을 받는 사람의 취약성으로 인해 돌봄은 자칫 지배가 될 수 있고, 돌봄이 필요한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 권력관계는 역전되기도 하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경계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그 어렵고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혹은 딸이나 며느리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노동엔 대가가 없고, 그들의 노동은 아무리 오래 해도 경력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력 단절의 이유가 된다. 모성이니, 헌신이니, 입에 발린 말들은 무성하지만 그들의 돌봄은 잘해도 본전이 못 되고, 조금만 잘못하면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집 밖에서 여성들이 걸핏하면 듣는 소리 “집에 가서 애나 봐”라는 말은 이 사회가 돌봄노동을 얼마나 폄하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돌보는 사람이 꼭 가족, 그것도 엄마일 필요는 없다. 현실의 엄마들이 온전히 가족을 돌보지 못할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이 사회는 애써 그러한 사실을 모른 척하고 ‘엄마의 사랑과 돌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엄마는 이중 삼중의 노동에 자기를 갈아넣는 것으로도 모자라 시시때때로 죄책감까지 가슴에 얹고 산다. 이렇게 돌봄을 가족과 여성에게 몽땅 떠넘긴 사회는 여성에게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그러한 가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살고 있으면서도 돌보는 사람이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결핍과 상처를 안고 살게 된다. 가족을 그렇게 강조하는 사회에서 동성 커플이나 비혼 가족의 경우처럼 실제로 동반자를 돌보고 있는데도 보호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대단한 아이러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가난한 엄마는 자기 가족을 돌볼 염은 내지 못하고 저임금, 고용불안, 인권침해에 시달리는 돌봄노동자가 되어 남을 돌보러 매일 집을 나선다. 정작 지금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가장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몇년 전 절찬리에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사채업자에게 대를 이어 시달리며 병든 할머니를 홀로 돌보고 사는 주인공을 돌본 것은 “회사는 기계가 다니는 뎁니까? 사람이 다니는 뎁니다”라고 외치던 직장 상사와 그 이웃들이었고, 최근에 화제 속에 종영된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하나같이 불우한 유년·청소년기로 인해 상처를 싸안고 사는 주인공들을 알게 모르게 돌봐온 것은 그들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양부모, 학교 선배, 직장 선후배와 동료, 친구였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얘기라고? 아니, 돌봄이 필요할 땐 누구나 돌봄을 받아야 하고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는 언제든 누군가를 돌보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돌보는 사람들의 노동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 이 사회에 돌봄의 가치를 존중하는 제도와 문화의 설계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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