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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피해자를 대하는 법

등록 2022-02-13 18:24수정 2022-02-14 02:02

9일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9일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해가 바뀌고 2월 중순에 접어들었는데도 일이 줄지 않는다.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해야 하는 이 시기에, 아직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나는 왜 이럴까? 한동안 자신의 게으름을 자책하다가,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델타 변이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8월, 나는 코로나19에 걸렸다. 격리기간은 2주 남짓이었지만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 족히 2~3개월은 걸린 것 같다. 그때 밀리고 미룬 일이 지금까지 내 허리춤을 잡고 뒤흔들고 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울분이 밀려왔다. 사실 나는 백신도 맞고 방역수칙도 나름대로 잘 지켰다. 그러다 어디서였는지도 모르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나, 피해자인데, 왜 이 부담을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하지? 지금 이 사회, 정상 맞아?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나?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벌써 15년쯤 전의 일이다. 영국 런던에서 유학하던 중에 말 그대로 ‘노상강도’를 당한 적이 있다. 상대는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동네 청소년들이었는데, 아무리 태권도의 한국인이라도 ‘쪽수’와 ‘흉기’(녀석들 가운데 하나는 가정용 가위를 들고 있었다) 앞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빼앗길 게 없는 가난한 유학생. 평소 같았으면 놈들은 크게 허탕을 쳤어야 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나는 시내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잔뜩 사 들고 들어오던 참이었다. 그뿐인가. 왜 하필 나는 그날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했을까? 내 라면과 조미김이 녀석들에게 이국적인 경험을 안겨주었길! 그래도 반짝이는 새 노키아 휴대폰은 어떻게든 되찾아야 했다.

사건 직후 경찰서로 달려갔다. 안되는 영어로 사건 진술을 하는 내내, 앞에 앉은 경찰관은 내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질문의 초점은 휴대전화였다. 개통 당일에 잃어버렸다고 하니 보험금을 노린 자작극을 의심했던 것이다. 상당히 까다로운 ‘취조’ 끝에 결국 나는 결백을 인정받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이다. 조금 전까지 눈썹을 치켜세우던 그 경찰관의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번졌고, ‘범죄 피해자’로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자신들이 나를 어떻게 보호해줄 것인지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자료 한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사건은 (좀 거창하게 말하면) 영구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경찰서를 나선 직후부터 한동안 경찰서가 발급해준 범죄 피해자 증명서는 내게 암행어사의 마패 같은 역할을 했다. 은행의 현금카드나 대영도서관의 출입카드를 재발급할 때 각각 5파운드쯤 하는 비용이 면제되는 식이었다. 학교에도 피해 사실을 알리자 소소한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이게 선진국이구나.’ 영국, 오줌 냄새 가득한 뒷골목이 전부가 아니었어. 솔직히 감동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자, 지금 이 대목에서, 코로나19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범죄 피해자가 되는 일은 고역이다’라고 썼을 것이다. 불행히도 많은 영역에서 실제로 그렇긴 하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겪은 지금,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덧붙이고자 한다. ‘그래도 새로운 영역에서 국가의 역량이 크게 발휘되고 있다.’

사실 그간 나를 코로나19 피해자로 대해준 것은 오직 국가뿐이었다. 적절한 격리·치료시설에서 나를 안전하게 보살펴준 것도, 나 때문에 빈집에 2주간 홀로 격리된 내 노모를 위해 음식과 약, 그리고 소정의 위로금을 제공해준 것도 국가였다. 물론 주변의 동료나 지인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사적 영역의 일이다. 반면, 직장이나 다른 여러가지 ‘일’로 얽힌 공적·사회적 관계에서 피해자로서 적절한 대우를 받은 기억은 없다. 모멸감을 견디며 피해자로서 배려를 구걸해도, ‘어쩌라고?’ 식의 반응을 수도 없이 겪었다.

이러한 당혹스러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까지도 우리는 기업을 포함한 민간부문은 21세기를 달리고 있는데 정부는 아직도 197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자조 어린 말을 자주 들어왔다. 적어도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서만큼은 정반대였다. 시민의식이나 국격의 성장 덕분이든, 아니면 단순한 ‘행정적 합리성’의 발로이든, 지금 대한민국의 어떤 영역에서는 정부가 가장 선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모습을, 정부의 다른 영역에서도,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석구석에서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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