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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문화는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등록 2022-02-15 18:19수정 2022-02-16 02:31

동아시아 국가들은 문화 민족주의를 매우 배타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왔다. 한국 누리꾼들이 특히 중국에 대해 ‘문화 공정’ 혐의를 품고 있지만 사실 한, 중, 일, 그리고 북한과 베트남의 ‘우리 민족 문화’ 구축 방식에서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며칠 전에 열린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은 일각의 국내 누리꾼 사이에서 소위 ‘한복 논란’을 촉발시켰다. 중국 56개 소수민족 대표들이 다 같이 중국의 오성홍기를 전달했는데, 그중에 재중국 동포(조선족)로 보이는 한 여성이 한복처럼 생긴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놀랄 만한 일도, ‘논란’까지 일으킬 일도 전혀 아니다. 소수민족들이 등장하는 중국의 거의 모든 공식 행사에서는 소수민족의 하나인 연변의 재중국 동포 여성들이 관습적으로 한복을 입곤 한다. 꼭 중국에서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고려인들은, 다민족 국가로서의 러시아의 성격을 과시해야 하는 행사마다 늘 한복을 입는다. 재미 동포들도 종종 그렇게 한다. 한데 중국 등 이웃나라를 제외한 그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국내 누리꾼 사이에서 ‘한복 논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서 한복이 등장하면 국내 누리꾼에게는 그게 오히려 ‘국위선양’으로 보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역내 국가,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에서 등장할 경우에는 ‘문화 공정’ 내지 ‘왜곡’이라는 혐의가 당장 생기는 것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유럽이나 북미 내지 남미, 아랍권 등과 달리 동아시아에는 그 어떤 초국가적인 포괄적 지역 국가 연합 등이 아직 성립된 바 없다. 심지어 유럽이나 북미에서의 영어나 중남미의 스페인어, 중동의 아랍어나 구소련 지역의 러시아어와 같은 지역적인 공통어마저도 없다. 전근대 동아시아의 공통어는 한문이었지만, 요즘 한국 같으면 대학생 중에서 자기 이름조차 한자로 못 쓰는 사람이 10명 중 2명 정도다. 여기 오슬로대학에서 중국, 한국, 일본 유학생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 잘 안되는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통이다.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한쪽의 북-중 동맹과 다른 한쪽의 한-미-일 동맹 사이의 대립까지 겹쳐져 ‘동아시아 공동체’라고 할 만한 게 사실 거의 아무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문화 민족주의를 매우 배타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왔다. 공통의 과거 지역 문화를 ‘우리 민족 문화’와 같은 방식으로 전유하고, 과거의 역사 등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한다. 한국 누리꾼들이 특히 중국에 대해 ‘문화 공정’ 혐의를 품고 있지만 사실 한, 중, 일, 그리고 북한과 베트남의 ‘우리 민족 문화’ 구축 방식에서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그 배타성이나 과거 지역 문화의 비역사적인 ‘민족화’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구미 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도 일본 군주의 칭호인 ‘천황’의 유래를 본래 중국에서 전래된 도교에서 찾고 있다. 고대 중국의 천황대제 등 도교의 신격들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군주의 칭호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와 같은 학설들이 일본 학교 교과서에서 소개될 수 있을까? 답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이번 ‘한복 논란’과 관련해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고구려와 발해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럽고 찬란한 역사”라고 반응했다. 발해의 일부 유민들이 고려에 흡수되어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역사의 일부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또 다른 발해 유민 집단이 요나라나 금나라에도 존재하여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애써 배제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고구려·발해 문화는 한반도 문화에 흡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청나라를 건국한 여진(만주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동북(만주)지역 문화의 기반을 구축했지만, 한국(과 북한)의 교과서들은 대개 고구려·발해를 배타적으로 한반도의 역사에만 귀속시킨다.

그런가 하면 중국 정부의 간행물에서는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표기해 그 역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중국어에 들어온 ‘소수민족’이라는 표현을 고대사에 적용시키는 것 자체가 비역사적이며 무리하지만, 중국 정부나 관변 지식인들은 개의치 않는다. 역사에 오늘날의 민족주의적 욕망들을 그대로 투영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배타적인 민족주의 잔치에 잠재적으로 가장 불리한 것은 바로 한국의 입장이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중국이나 일본, 혹은 북한과 베트남 등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내 가장 많은 디아스포라들은 바로 한반도 출신들이다. 지리적으로도 한반도는 동아시아 지역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과거의 지역적 문화 유산을 동아시아 주민 모두의 공동 유산으로 여기는, 좀 더 차분하고 객관적인 입장이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의 한국 ‘국익’에 더 부합된다. 그러나 중-미 대립이 격화되고 국내에서 중국에 대한 혐오 감정들이 무분별하게 분출되는 가운데 대선 정국을 맞아 ‘표심’에 목을 매는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어떤 긍정적인 의미도, 필요도 없는 ‘한복 논란’을 마치 큰일인 것처럼 키웠다.

예컨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5일 성명을 통해 아무런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을 ‘강력히 규탄’한 뒤 다음과 같은 놀라운 주장을 펼쳤다. 지금 유럽에서는 중국인들이 버젓이 한식당을 열어 한류를 돈벌이에 이용하며 한식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오슬로에서 흔히 스시(초밥) 식당들을 운영하는 한국 교민들은 ‘남의 나라 음식’을 팔지 말고 자진 폐업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선진국이 된 나라에서 이와 같은 농도의 자폐적 국수주의가 국회에서 발설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다.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문화 공정 반대’를 외치는 등 이 배타주의적 감정의 분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편승하기 바빴다.

아쉬운 일이다. 시민들에게 냉정함과 객관성, 그리고 포용성과 국제 감각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국수주의적 광란에 가세하면 이는 상황을 대대적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사실 민주화를 자기 힘으로 이룬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이야말로 문화를 소유하려는 퇴영적인 배타주의에 가장 잘 맞설 수 있는 역내 국가이다. 내 꿈 같아서는, 한국에서 점차 ‘한국사’라는 이름의 일국 역사 대신에 세계사적 내지 지역사적 맥락에서 본 한반도의 역사를 각급 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쳤으면 한다. 시야를 동아시아 지역 전체나 세계로 넓혀야 각종 문화들이 서로 어울리고 섞인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목을 이수할 학생들에게 이번 ‘한복 논란’ 같은 해프닝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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