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2018년 7월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 속 학교 급식실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권윤숙 학교급식실 조리사
저녁 늦게 카톡이 왔다. 맏언니 소식이었다. 요로결석이란다.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의사 지시도 받았단다. 그러면서 막내인 나한테도 이제부터는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다. 참 난감하다. 물을 먹지 않아서 요로결석에 걸릴 것인지, 참아서 방광염에 걸릴 것인지, 너무도 가혹한 운명 앞에 놓였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학생 수가 줄면 감원을 강행했다. 동료끼리 서로를 평가해서 누군가를 퇴사시켰다.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내 점수를 형편없이 평가해서 나를 감원 대상으로 정했다. 다행히 1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고, 전보 제도가 생겨 5년 이상 근무자 등 감원 대상자를 내보내지 않고 다른 학교로 발령내 주었다. 그러면서 무기계약직이 무슨 비정규직이냐는 조롱 섞인 발언들이 나왔다. 그러면 학교 공무직들은 정규직일까?
교육 공무원이 아니기에 공무원법을 적용받지 않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이면서, 일하는 공간이 학교이기에 근로기준법의 또 어떤 것은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하는 일은 같은데 지역마다 처우나 지침도 다르다. 그래서 공무직법을 만들려고 해도 번번이 무산되었다. 시험도 안 보고 떼를 써서 들어온 것들이 공무원을 하려고 한다는 가짜뉴스가 늘 발목을 잡았다.
신의 직장이라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며 다 자르고 시험 쳐서 다시 뽑아야 한다는 악플을 볼 때마다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다. 공무직도 교육청에서 시험 쳐서 뽑고 있고,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다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은 대부분 경력단절 여성이면서 자식들 잘 키워보겠다고 나온 어머니들이라고. 그래서 힘에 부치고 박봉이라 느껴도 그냥 꾹 참고 버티는 거라고.
교육청 누리집에 들어가면 학기별로 두 번 채용공고를 내는데 제발 많이들 지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일이 위험하고 박봉이라는 소문이 난 것인지 14명 미달 사태가 나기도 했다. 우리 지역은 미달 사태까지는 아니어도 예비 합격자들을 입사시키고도 중도 퇴사자가 많아 다시 채용공고를 낸 게 여러 번이다. 그나마도 몇 년 뒤면 정년을 맞는 ‘신입사원’들이 입사해 나 같은 40대가 막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올해(2021년) 최저임금이 209시간 기준 182만2480원이다. 8년 경력 나의 연봉은 2600만원이다. 누군가에겐 큰 임금일 것이다. 이 임금을 부족하다고 느끼면 도둑 심보일까?
처음 입사하고 몇 달은, 아침마다 몸이 부어 발을 제대로 디디지도 못하고 기어다녔다. 온갖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버티는 이유가 있다. 힘들면 그만두라는 비아냥에도 꿋꿋이 맞서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식을 키워내야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야 겨우 자식들을 키울 수 있기에 그냥 인내하고 버티는 것이다. 그래서 몸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서라도 급식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 나이고 우리 선배들이다.
“괜찮아요?” 사람이 아프면 이 말부터 건네는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교실 배식이라 배식 차를 먼저 올리고 나서야 맏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토할 거 같아.”
“들어가 좀 앉아 있어요. 나머지는 우리가 할게요.”
“어떻게 그래? 다들 힘들어서 안 돼.” 기어코 선배님은 전처리실 청소를 시작했다. 1차 배식 차를 올렸는데도 조리실의 업무는 끝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3차 배식을 하고 있어서다. 여러 번 나눠서 무치고 끓이고를 반복해야 한다. 당연히 업무는 평소보다 더 늘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는 것인가 싶어 너무 서운하다.
낮 1시가 넘어서야 겨우 정리하고 점심을 뜬다. 몸이 안 좋았던 맏언니는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나 미안한데 병원에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뭐가 미안해요. 모두 베테랑인데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얼른 병원부터 가봐요.” 우리는 웃으면서 거짓말을 했다.
맏언니를 보내고 남은 네 명이 2차 청소에 들어갔다. 급식이 끝난 배식 차를 내리고, 잔반을 모으고 세척 후 열탕을 한 다음 소독고에 정리한다. 겹쳐진 식판을 떼면서 손톱이 또 찢어져 버렸다. 악 소리가 나는 고통이 밀려와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바닥까지 청소하고 물기를 제거한 다음 수저통을 소독고에 쌓아 놓아야 하루가 정리된다. 오늘 밤에는 몸이 펴지지 않으리라. 또 만세를 하고 자야겠구나.
저녁 늦게 카톡이 왔다. 맏언니 소식이었다. 요로결석이란다.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의사 지시도 받았단다. 그러면서 막내인 나한테도 이제부터는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다. 안 그러면 요로결석이라는 병이 기다린다는데, 참 난감하다. 물을 먹지 않아서 요로결석에 걸릴 것인지, 참아서 방광염에 걸릴 것인지, 너무도 가혹한 운명 앞에 놓였다.
가끔 허공에라도 대고 말하고 싶다. 제발 우리 좀 살 수 있게 이 살인적인 인원 배치 기준을 조정해달라고, 학교에 학생과 교사만 있는 것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저 구석에도 사람이 있다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다음주에는 다른 수기가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