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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권 없는 종교

등록 2022-02-21 08:59수정 2022-02-21 09:16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2018 수륙대재’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부의 연등이 걸려있었다고 주장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2018 수륙대재’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부의 연등이 걸려있었다고 주장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뉴노멀-종교] 구형찬|인지종교학자

주술, 점복, 무속.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매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인터넷 검색어 트렌드를 확인해보면 최근 들어 검색량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종교학자로서 관심을 가져볼 만한 일이다. 그 용어들이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한국 종교문화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 종교학에서 주술, 점복, 무속은 특수한 형태의 문화 현상을 가리키는 가치중립적인 개념들이다. 주술과 점복은 특별한 원리나 힘을 통해 세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의사결정을 하려는 것으로서,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정 종교 전통 내부에서 관찰되기도 하고, 종교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무속은 한국에서 무당의 활동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종교적 전통을 가리킨다.

하지만 최근 그 용어들이 언급되는 용례와 맥락은 학술적인 개념과 별로 관계가 없다. 일상에서는 오히려 용례와 맥락이 단어의 의미를 결정한다. 그 용어들은 “나랏일을 맡겨달라는 사람이 과학에 반하고 종교에는 못 미치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할 때 사용되고 있다. 왠지 그리 낯설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오방낭’이나 ‘우주의 기운’이 회자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 싸늘한 냉소와 우려가 담긴 비판들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종교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첫째, 체계적인 교리가 있어야 종교답다는 생각. 둘째, 무속은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 셋째, 주술과 점복은 정상적인 종교와는 상관이 없을 거라는 생각. 넷째, 나랏일 하는 사람이 믿을 만한 종교는 따로 있다는 생각.

모두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전부 근거가 부족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세계에는 무척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있고 그중 일부만이 체계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다. 무속은 교리보다 무당의 경험과 능력을 중시하는 특별한 형태의 종교로서, 20세기부터 ‘미신’과 ‘전통’ 사이에서 독특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해왔다. 학자에 따라서는 무속이 종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무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주술과 점복의 종교적 대응물들은 대부분의 제도종교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가령 불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주술과 점복이 무익하다고 평가되지만 ‘방편’의 형식으로 전승된다. 또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도 주술과 점복이 금지되지만, 신의 권능을 통한 치병과 축귀와 예언의 전통은 존재한다. 캐럴에서도 ‘동방박사’가 별점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아간다. 그리고 당연히 나랏일을 하는 사람도 자유롭게 자기가 믿을 종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그러나 헌법은 당위를 선언할 뿐 결코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다. 일상의 경험은 헌법이 말하고 있는 것보다 꽤 복잡하다. ‘종교의 자유’는 선택의 자유와 포교의 자유 사이에서 종종 길을 잃는다. 무속이나 이슬람과 같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유를 요구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 역시 현실이 아니다. 힘 있는 종교 단체는 필요할 때마다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국회의 입법 과정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들이 정교분리를 외치는 것은 대개 정부의 간섭을 피하고자 할 때뿐이다.

대선을 앞두고 달아오른 주술, 점복, 무속의 논란을 우리 사회 종교문화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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