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방혜린 |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예비역 대위
나는 ‘그녀’가 오롯이 본인의 의지로 어떤 날과 시점을 고를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은 분명 2021년 2월28일 즈음이 될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불가피한 수술과 이로 인해 뜻하지 않은 실직을 겪으며 한순간 군인에서 투사로 변신해야 했던 그녀의 삶에서, 만일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선택할 것이라고. 2021년 2월28일은 다름 아닌, 고 변희수 하사가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정상적인 군 생활을 하였다면 동기들과 같이 맞이할 전역일이었다.
직업군인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노동시간 대비 임금, 복리후생의 질, 워라밸, 충분한 여가시간 등 직업을 선택하는 조건 중 군인이라는 직업이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란 거의 없다.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호소할 수 있는 경로가 거의 없고,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복무해야 하며, 잦은 대기와 상황에 시달려야 한다. 전국 오지에 퍼져 있는 부대 특성상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물론, 인프라가 제대로 마련된 근무지도 드물다. 직업군인으로 복무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남군에게든 여군에게든 성소수자 군인에게든 모두에게 어려운 결정이다.
같은 전역군인으로서,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 어떤 역경에도 군인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고자 했던 그녀의 열망에 깊이 공명하게 됐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남몰래, 혹시나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원래 예정된 전역일 즈음일 것이다, 그게 군인으로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라고, 그런 마음을 한켠에 둔 채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던 그녀의 여정에 동행했었다. 황망함을 느끼기도 어려울 만큼 급작스러웠던 지난해 3월의 장례식에서, 나는 조용히 속으로 그녀만을 위한 조촐한 전역식을 치렀다.
변희수 하사는 2021년 10월 끝내 전역처분 취소 소송에서 육군을 이기고, 항소 포기를 받아내며 그토록 바라던 작은 승리를 사후에나마 일궈냈다. 그러나 여전히 육군과 국방부는 변희수 하사의 죽음이 과연 국가 책임인지 판단하기를 주저하는 중이다. 그녀가 과연 군인 신분인 상태에서 사망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다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변희수 하사의 전역일은 앞서 말한 대로 2월28일이었기 때문에, 2월28일 밤 12시 전에 사망했다면 군인 신분으로 사망한 것이 된다.
육군이 들고나온 근거는 전역처분 취소 소송의 판결문이다. 판결문에서 그녀의 사망 시점을 3월3일로 명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변희수 하사의 가족이 소송 승계(수계)를 법원에 제출한 사망진단서에 따라 작성된 것이고, 사망 시점이 주요 쟁점도 아니었다. 실제 변사 상태로 발견된 망자의 사망 시점을 확정하는 것은 경찰의 소관이다. 변희수 하사 변사 사건 수사 결과에는 사망 시점이 ‘2021년 2월 27일’로 기록되어 있다.
법원이 변희수 하사의 전역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요지는, 육군이 완연히 여성이 된 그녀에 대해 복무 가능 여부를 판단할 당시 ‘여성’으로서 판단하지 않고 남성의 기준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애당초 위법한 조치라는 것이었다. 원치 않은 강제전역 자체가 군의 책임이므로 이는 국가폭력에 해당하며 당연히 순직 처리되어야 한다. 육군과 국방부는 이 결정을 내리기가 부담스럽거나 싫거나 혹은 둘 다인 것이다.
망자의 마음을 산 자가 어찌 전부 가늠할 수 있겠냐마는, 싸우고 싸우다 끝내 군인으로서 이 싸움의 마무리를 짓고자 했던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는 주말인 2월27일은 변희수 하사가 사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녀의 삶에 대해서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한다. 끝으로, 한 치도 가늠할 수 없는 차별과의 전장에서 군인으로 투쟁하다 군인으로 간 희수의 전역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