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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로나에 패배하지 않는 정치가 되려면

등록 2022-02-22 18:29수정 2022-02-23 02:01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9만여명을 기록한 지난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 선별검사소에서 PCR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9만여명을 기록한 지난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 선별검사소에서 PCR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코로나는 참 끈질기다. 벌써 세번째 해에 접어들었고 모습을 바꾸어가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바이러스는 우리의 건강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전염병은 언제나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전염이 두려워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으니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불편이 따른다. 사람들의 이동이 줄어드니 경제도 침체하게 된다. 어려워진 경제는 사람들의 분노를 더 자극한다. 정부와 의료진은 바이러스와 열심히 싸우지만, 보이지 않고 변신에 능한 적들과 싸우기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때로는 대응이 늦고 서툴기도 하다. 대응의 미숙함이 다시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백신이 무기가 된 것은 맞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신과 불편의 또 다른 씨앗이 되었다.

전염성 바이러스는 건강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사회에 이런 분노와 분열의 씨앗을 뿌리기 때문에 더 무섭다. 이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워 시위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지만, 통계를 보면 오히려 늘어난다.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 전염병 발생 약 10개월 후 시위가 증가하기 시작하고 2년쯤 되면 그 횟수가 정점에 이른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도 전세계 시위 횟수는 그 전해보다 10%가 늘어났다. 지금이 정점에 이른다는 2년이 지난 시점이다. 분노 게이지가 최고조에 이를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코로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어정쩡할 수밖에 없다. 전염을 차단하려면 사람의 이동을 제한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제한하면 경제적 피해가 너무 커진다. 그래서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어정쩡한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정쩡하다는 것은, 다른 표현으로는 균형을 맞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2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한 나라에서는 방역과 경제 성과가 모두 좋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균형을 아주 잘 맞추어온 나라였다. 코로나로 목숨을 잃은 사람 수는, 통계를 믿을 만한 나라 중에서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인구 10만명당 코로나 사망자 수는 우리가 14.5명인 데 비해 미국은 287명이고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는 대부분 150~250명 수준이다. 우리의 10배 혹은 20배 수준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우리는 코로나 충격을 가장 작게 받고, 또 그 충격에서 가장 빨리 회복한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균형 있는 대응, 다른 말로는 어정쩡한 대책은 누구도 흡족하게 만들 수 없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만 평상시처럼 수업할 수 없고, 식당은 문을 열지만 일찍 닫아야 한다. 그 피해를 정부가 손실보상제를 제도화해 보상해준다고 하지만 피해의 크기를 매출 자료를 이용해 가늠한 후 보상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국민들은 이런 불완전하고 불편한 대응을 지금까지 인내하면서 2년을 버텼다. 모두가 같이 고생하고 있고 또 같이 힘을 합칠 때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터널의 끝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내가 바닥나고 분노가 최대치에 이른 이 시기에,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어떤 후보는 표를 얻기 위해 사람들 마음속의 불만을 자극한다. 분노의 자극이 당장 득표에는 유리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은 코로나를 물리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무기를 파괴하고 또 후보 자신의 발밑을 스스로 파는 행위다.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인내와 연대라는 ‘사회적 자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노를 자극해 이것을 허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입은 갑옷을 벗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후보 중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 계속 코로나와의 전쟁을 지휘해야 할 것이다. 이 사회적 자본이 허물어진 다음에는 국민들에게 무슨 무기를 갖고 같이 이겨내자고 할 것인가?

비판은 언제나 개선의 시작이다. 하지만 정책의 개선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분노의 자극을 위한 선동을 하고 있다면, 코로나 시대에 국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말만 앞세울 뿐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책임지지도 못하는 집단이라면, 그들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우리를 패배의 길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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