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 21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토론회에서 국가채무비율 등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이강국 l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대선 후보들의 경제분야 토론회가 끝나고 온 국민이 기축통화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다. 논란은 한국의 적절한 국가채무비율을 둘러싼 토론에서 시작됐다. 이 질문에 이재명 후보는 국제통화기금이 선진국의 경우 국내총생산 대비 85%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한국은 비기축통화 국가라서 국가채무비율을 낮게 유지해야 하며 50~60%가 넘으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재명 후보는 원화가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고, 토론 이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대체 기축통화가 뭐길래 시끄러웠고 국가채무비율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사실 기축통화란 엄밀한 개념은 아니다. 원론적으로 국제결제나 금융거래에 주로 사용되는 통화인 달러를 의미하지만 넓게 보면 유로와 파운드, 그리고 엔까지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원화가 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을 구성하는 통화바스켓에 편입될 수 있다는 보도에 기초하여 그런 말을 했다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기축통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기축통화 여부는 적절한 국가채무비율과 별 관련이 없다. 경제학 연구나 국제기구들은 국가채무비율을 평가하는 데 기축통화냐 아니냐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도 지난해 보고서에서 한국의 정부 부채비율 전망에 관해 선진국 상한인 85%에 기초하여 평가했다.
재정을 위해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통화주권이다. 유사시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발행해서 국채를 시장에서 매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로를 쓰지만 그리스는 통화주권이 없어서 재정위기를 겪기도 했다. 물론 거시경제의 불균형이 심각하고 대외신인도와 통화의 위상이 낮은 개발도상국들은 특히 국채에 대한 외국인투자 비중이 높은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크게 높아지면 국채와 외환시장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고 국가신용도는 높으며 국가부도위험 지표도 매우 낮다. 2021년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 대비 약 47%(기획재정부)이고 국제비교 기준인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약 51%(국제통화기금 재정점검보고서)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낮다. 소위 비기축통화국들 중에서도 중간 정도다. 무엇보다 한국 국채의 37%는 대응자산이 있는 금융성 채무인데 그 상당 부분이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한 것이다. 이를 빼면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 대비 34%로 더욱 낮아진다.
그렇다면 기축통화든 아니든 지속가능한 국가채무비율의 상한선은 어느 정도일까. 여러 경제학자들은 그것도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 경제성장률과 금리, 그리고 성장전망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국제통화기금은 과거 외환위기의 선행지표에 기초하여 선진국 85%를 제시했지만 이미 대부분 선진국의 부채비율은 그보다 높다. 연구결과도 서로 달라서 국제통화기금과 무디스의 연구는 2015년 한국의 지속가능한 최대의 부채비율이 현실의 수치보다 약 200%포인트나 높아서 재정여력이 세계 최고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재정정책의 기준으로 국가채무비율 대신 국내총생산 대비 국채이자지급액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재정정책의 핵심은 위기의 상흔으로 인한 이력효과를 극복하고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생산성과 출산율을 제고하는 공공투자 확대는 미래의 성장을 촉진하여 재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니 보수 야당 후보들은 원화가 특히 비기축통화라는 이유로, 국가채무비율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코로나 위기에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적은 재정지출을 수행한 한국에서 기축통화 논란이 재정확장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멀리 보면 진짜 문제는 일본처럼 장기적으로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국가채무비율이 끝없이 상승하는 일일 것이다. 세계 최저인 출산율과 최고로 빠른 고령화 앞에서 지금과 같이 저부담 중복지 정책을 계속한다면 수십년 후 한국의 미래가 그럴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번 대선 공약의 실현에 여야 모두 약 300조원의 재정지출이 필요하다는데 공약에서 증세를 포함한 재원조달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말로 재정건전성을 생각한다면 어느 후보든 증세라는 의제를 꺼내야 하겠지만, 선거에서 그런 이야기는 역시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일까. 재정의 철학과 미래에 관한 논쟁은 없이 기축통화 논란만 시끄러우니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