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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어떤 유권자의 슬픔

등록 2022-03-01 18:05수정 2022-03-02 02:31

현 정부 초기인 2017년 5월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 앞에서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 정부 초기인 2017년 5월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 앞에서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프리즘] 김경락 | 경제팀장

20대 대선이 종반전에 들어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식 토론회도 몇차례 진행됐고 ‘낙장불입’ 정책 공약집도 나왔다. 유권자 마음속엔 지지 후보가 자리잡았을 터이지만 엎치락뒤치락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그 차이가 크지 않다고 말한다. 종반전임에도 알쏭달쏭한 각 후보의 발언과 행보가 이어지는 이유일 테다.

누구나 알듯이 선거는 상대평가다. 그래서 선거 전략은 크게 두가지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후보를 돋보이게 하는 전략, 상대 후보를 부족해 보이게 하는 전략이 그것이다. 전자를 ‘포지티브 전략’, 후자는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부른다. 어떤 전략이든 통하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대선 경쟁은 네거티브 전략이 중심을 이룬다고 평한다.

3월10일 투표일 다음날부터 이런 전개는 한순간에 뒤바뀔 것이다. 우선 국민의 잣대는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이동한다. 당선자의 실정·실언을 놓고 ‘패한 후보보다 낫지 않으냐’며 아량을 갖고 이해해주는 국민은 적다. 당선자도 상대적 우위가 아닌 절대적 탁월함을 요구받고 또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내지 책임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행정부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가 갖는 무게는 후보에 견줄 바가 아니니까.

네거티브 전략에 힘입어 거머쥔 박빙의 승리 이후 계산서는 좀 더 두툼할 것이다. 조용히 뒷수습하기엔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해 섬세한 검토 없이 내지른 공약들이 많다. 이후 구성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우선순위를 가려 ‘국정 과제’를 내놓을 테지만, ‘그때 그 약속’을 기억하는 유권자 상당수는 당선자에 대한 기대나 지지를 서둘러 접을 수도 있다.

이번 대선에선 제도 변화 약속만큼이나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공약을 각 후보가 쏟아냈다.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공약은 수혜자가 명확하고 이행 검증도 수월한 터라 불이행 시 뒤따르는 정무·정치적 부담이 제도 개혁성 공약에 견줘 상대적으로 크다. 당장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올해 초 두달 가까이 정부에 뭇매를 놓으며 제시한 35조~50조원 재정 지출 약속부터 이행될 수 있을까. 어떤 후보는 공약집에도 담지 않은 기초연금 인상 계획을 내놓는가 하면, 또 다른 후보는 연간 5조~7조원에 이르는 세수를 포기하는 대주주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폐지 입장을 고수한다. 어쩌면 투표일 당일까지 계산서 두께는 더 두꺼워질지도 모르겠다.

달라지는 건 또 있다. 선거전 속 자욱했던 포연이 사라지면 ‘객관적 현실’이 ‘주관의 세계’를 밀어낸다. 주관의 세계에선 디지털 정부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경제성장률도 손쉽게 우상향시킬 수 있으며 코스피도 ‘약간의 손질’만 하면 5000포인트를 뚫을 수 있지만, 객관의 세계에선 하나같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안이다.

‘0.81’(합계출산율·명), ‘3.6’(소비자물가 상승률·%), ‘1862’(가계부채·조원), ‘1204’(원-달러 환율·원), ‘95.4’(두바이유·달러)와 같은 숫자들의 무게감도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모두 객관의 세계를 표상할 뿐만 아니라 당선자가 마음먹는 대로 하기 힘든 숫자들이다. 수년의 내력이 있고 상대가 있으며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초기 대통령 집무실에 비치한 ‘일자리 상황판’이 유명무실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객관적 세계의 큰 부분으로 추가됐다. 국제 정치와 경제의 변곡점이라고 할 만한 세기적 사건의 전개 속에서 등장하는 과제들이 일주일여 뒤 등장할 당선자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현 정권은 물론 그 전임 정권도 진지하게 살펴볼 일 없던 과제들이다.

절대평가의 시기와 객관의 세계에서 어떤 후보가 얼마만큼의 탁월함을 보여줄지를 상대평가의 시기와 주관의 세계에선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건 네거티브 선거전이 유권자에게 던진 비애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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