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도로 위에서 맨홀 점검을 할 때, 다른 안전장치 없이 라바콘만 세워둔 채 작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서총명 제공
서총명 | 맨홀 점검 노동자
2019년에는 우유배달을 했고, 2020년부터 맨홀 점검 일을 했다. 우유배달은 7개월간 서울 목동지역에서 했다. 이후 2020년 6개월간 하수도 맨홀 점검에 이어 2021년 역시 같은 시간만큼 상수도 맨홀 점검 작업을 했다. 이 글은 상하수도 맨홀 점검과 우유배달에 관한 비정규 노동 일지다.
상수도와 하수도는 도시위생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공급은 상수도로, 배출은 하수도로 이뤄지는데 이 상하수도의 청결이 도시와 시민들의 위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길을 가다 보면 같은 하수도 맨홀이지만 다른 이름이 쓰인 걸 볼 수 있다. ‘하수’, ‘오수’, ‘우수’ 등이 대표적이다. 하수와 오수는 쉽게 말해 더러운 물이고, 우수는 빗물이다. 이곳을 통해 화장실과 주방에서 나오는 물부터, 공공건물과 영업건물에서 나오는 오물 등이 끊임없이 배출된다. 배출되는 곳이기에 하수도는 더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더러운 것들을 눈앞에서 치워버린다. 땅속으로 감춰진 채 우리 발밑에서 계속 흐르는 이 더러운 물들도 마찬가지다. 나, 또는 우리가 내보낸 배설물도 거기 섞여 있다. 그런데 맨홀을 열다 보면 희한하게 ‘향기’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명 더러운 물인데, 세제와 샴푸 향이 악취마저 감추고 있는 건지. 이럴 때면 참 웃기다. 오늘도 나는 악취인지 향기인지 모를 냄새를 맡으며 하수도를 점검했다.
눈앞에서 사라진 폐기물이 이제는 냄새까지 잃어가고 있다. 자연에도, 결국 내게도 해로울 향기인 걸 알지만 우리는 잠깐의 악취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선을 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눈과 귀를 가리며 살고 있다. 악취 아닌 악취, 향기 아닌 향기를 맡으며 말이다. 예전에 비가 많이 내리면 하수가 역류해서 마을 전체가 진짜 똥통에 빠진 것처럼 오물과 물로 뒤덮인 모습을 뉴스를 통해 시청하곤 했는데. 이제 우리는 단단한 맨홀 위를 걸을 뿐이다. 더러운 건 눈앞에서 치우고, 악취를 묘한 향기로 바꾼 채.
그런데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은 감추어졌던 많은 것들이 드러나는 날이다. 비 내리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럴 때면 하수 맨홀에서는 악취가 진동한다. 악취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마치 비가 가려진 눈과 막혔던 코를 뚫은 것처럼,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더러움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눈에 보이고 나지 않았던 악취가 난다. 숱한 하수와 오수가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것 같다. 나도 그때 비로소 도시의 문제, 삶의 모순 등을 생각하게 됐다. 눈과 코를 씻고 하수 맨홀을 다시 본다. 그건 분명 내가 배출한 것들이 맞다.
맨홀 점검을 하다 보면 종종 차도 한가운데서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출퇴근 차량으로 꽉 찬 도로를 막고 교통을 통제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하다 보면 차도 안 무서워지고 기계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생과 사의 경계가 어딘가 있겠지만, 그 경계가 흐려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찌는 무더위와 피로는 경계를 잊게 한다. 오늘도 출근길 6차선 도로 한가운데에 있는 맨홀을 점검하기 위해 차선을 통제했다.
꼬깔콘(라바콘) 세개, 경광봉 하나 들고 달려오는 차량을 막고 있는데 택시 한대가 ‘빵빵’ 경적을 울리며 나를 향해 무섭게 돌진해왔다. 일을 하다 보면 어떤 믿음이 생긴다. 예컨대 아무리 쌩하고 달려오는 차라고 해도, 저 차가 작업 중인 나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운전자를 신뢰하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믿어야만 작업이 가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차량을 통제하고 있으면 보통은 통제에 따라 미리미리 옆 차선으로 비키는 게 대부분이고, 가끔 차선을 바꾸지 못해 내 바로 앞까지 오는 경우가 있어도 크게 무섭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 믿음이 흔들렸다. 차는 경적을 울리며 차선을 통제하는 내게 빠르게 달려왔고 급기야 나는 통제를 포기하고 옆 차선으로 몸을 피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그 자리를 쌩하고 지나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넋이 나가버렸다. 놀라서도, 두려워서도 아니라 무언가 짓밟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주황색 라바콘 세개 세워둔 채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그게 전부고 현실이다. 차로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였다. ‘죽음의 외주화’ 그건 특별한 일이 아니고 비정규 노동자가 겪는 흔한 일상이다. 맨홀 점검이라는 도시 정비 작업을 하다 문득 생각했다. 도시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 기획되고 구성되었는지. 승용차를 이용해 출근하는 노동자와 그 차로 아래를 점검하는 노동자 사이의 간극이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져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하루였다. 내일은 그저 점검해야 할 맨홀들이 차로에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