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오후 광주 북구 용봉동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친 뒤 손에 기표 도장을 찍고 기념사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숨&결]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근거 없는 정치공작의 산물이었던 지역주의와 비교해 보수 야당의 성별 갈라치기는 부분적이지만 물적 토대를 가진다. 소수 정치엘리트 청년에 의해 성차별을 포함한 사회의 모든 불평등을 위장하는 핵심 도구로 키워져온 능력주의 담론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남성에게만 소구력 있는 전략이었다면 보수 야당이 이처럼 전면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능력이 있어도 차별받아왔던 여성에게 공정한 경쟁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이다.
그러나 엄격한 차별시정이 수반되지 못하는 현실에서의 능력주의는 허구적 논리에 불과하다. 차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서 공정한 경쟁을 주장한다? 모든 것이 개인의 능력에 달렸으니 노동시장에서 우월한 젠더인 남성과 똑같이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가? 남성이 가정에서 여성과 똑같이 역할을 분담해주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자원을 보유한 여성은 극히 소수이며 설사 비슷한 자리까지 올라간다 해도 그들의 봉건적 세계관 아래에서 이등 시민의 명찰을 떼기 어렵다.
너무 여러차례 정당을 오가서 정확한 정치적 지향을 알기 어려운데다 선택의 순간 직전 후보 사퇴를 통해 보수 야당에 합류한 후보의 시장 우선주의 역시 성평등 실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가 주장하는 작은 정부와 기업 감세는 보육과 같이 평등을 촉진할 수 있는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어렵게 만든다. 시장에서 고가의 보육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여성을 제외한 대다수 평범한 여성의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한편, 육아의 질은 첨예하게 차별화되고 아동기 불평등도 악화된다.
현 정부는 취임 때 성평등 사회의 실현을 약속했지만,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노정한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의 설치를 중도에 포기하여 국정과제에서 밝힌 강력한 정책 추진체계가 마련되지 못한 점이 특히 아쉽다. 여성 정책은 여성에 특화된 정책 추진에 머물러서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여성과 남성을 무조건 동등하게 처우할 때 노동시장에서 불평등한 격차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더 어려운 상황의 여성에 대한 특별 처우 역시 여성의 다름을 강조하며 차별을 영속시킬 수 있다. 여성 친화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노력이 질 낮은 일자리에 여성이 집중되는 현상을 가져와 고용상의 성평등을 오히려 제한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는 것은 의미 있는 개선이다.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시민이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남성이 돌볼 수 있는 자유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제고하려는 시도가 성평등한 복지국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새로운 대통령이 성평등을 얼마나 진심으로 지지하는지의 여부에 의해 우리 사회가 만연해 있는 혐오와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가가 결정될 것이다.
또한 비록 겉으로는 성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성평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은 소득이 없거나 적은 여성의 가정 내 교섭권을 높이고 유급노동과 가사 사이의 선택의 자유를 조금 더 확장해갈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의제를 더 전문적으로 추진하는 소수 정당과의 정책 연대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현실의 벽을 넘어 우리가 진전할 수 있게 해온 소수 의견의 대다수는 해당 시기에 미친 생각들로 여겨졌다.
여성이 법적으로는 어떤 재산권 행사도 할 수 없이 남성의 동산에 불과했던 투명인간이었던 시기, 여성에게 참정권을 달라는 것도 이런 미친 생각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그것을 얻기 위해 수많은 여성이 벌금을 내고 투옥되었으며 심지어는 국왕 경주마의 말발굽 아래 몸을 던져 목숨을 잃어야 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신중한 한 표의 행사를 통해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는 여성이 많아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