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우수상
사람이 치사해지는 게 한순간이었다. 쿠팡, 신문배달 아저씨들과 엘리베이터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다니 참 유치한 일이지만 그렇게 됐다.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는 날에는 독점하기 위해 배달이 15층이면 15층, 16층을 함께 눌렀다.
서총명 | 맨홀 점검 노동자
한 가지 일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는 시대이다. 부업을 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서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우유배달을 선택했다. 일주일에 3일만 배달하면 되고, 시간도 내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새벽 1시쯤 대리점에서 그날의 우유를 수령하는데, 배달하는 사람이 직접 챙겨야 한다. 배달지 목록을 확인하고 우유, 유산균 음료, 계란까지 꼼꼼히 확인한 뒤 차에 싣고 배달지로 향한다. 브랜드마다 몇 종류의 우유가 있고, 4~5개 브랜드의 우유를 취급하니 배달하는 우유 종류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처음에는 우유 브랜드와 제품명을 외우는 게 일이었다.
나는 목동 6단지를 담당했는데, 목동 6단지 아파트는 주차공간 부족으로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장을 채우고 있어서 단지 내에는 차 한 대 운행할 수 있는 공간만이 있었다. 새벽 배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비상등을 켜고 그냥 그 좁은 길에 차를 세우고 뛰어서 배달해야만 했다. 혹시 배달하는 동안 다른 차들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경우가 생기면 그 새벽에 빵빵댈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동부터 배달을 시작해서 ×××동에서 끝나는 순서로 배달을 했는데, ×××동 배달을 모두 마쳤을 때 차 안에는 우유가 남아 있지 않아야 정상이다. 배달이 끝났는데 우유가 남아 있거나, 배달 중에 우유가 부족하면 착오가 생긴 것이니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정신없이 배달을 하다 보면 가끔 그런 일이 생긴다.
밤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잠이 안 온다. 새벽에 일어나 우유배달을 가야 하는데 짜증부터 난다. 비를 맞으며 배달해야 하는 나 자신이 처량해진다. 그럴 때마다 내 위치를 깨닫는다. 쿠팡, 신문배달 아저씨도 비슷할 것이다. 평소에는 못 느끼지만 비 오는 날에 밀려오는 그런 감정들. 따뜻한 실내와 대비되는 비 오는 새벽 거리, 잠든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우리가 있기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엔 비에 맞은 생쥐 꼴이 우습게만 느껴진다.
내게 성공이란 ‘안’과 ‘밖’의 세상으로 명확히 나뉜다. 누군가는 안으로, 누군가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그 생활이 힘들어 ‘그만둬야지’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적은 임금이나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이따금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우유배달은 7개월 만에 그만뒀다. 2019년 1월부터 7월까지 매주 월·수·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파트 단지를 돌았는데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나와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불 꺼진 아파트 복도가 무섭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고, 배달 다 마치고 보니 우유가 한 개 남아서 처음부터 일일이 다시 확인한 적도 있었다. 새벽 3시에 경음기를 울리며 차를 빼달라는 사람으로 인해 15층에서 소리 내지 않고 뛰어 내려간 적도 있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조마조마한 일이 더 많았다.
내가 ‘을’이 되어 보니 사람이 치사해지는 게 한순간이었다. 쿠팡, 신문배달 아저씨들과 엘리베이터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다니 참 유치한 일이지만 그렇게 됐다.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는 날에는 독점하기 위해 배달이 15층이면 15층, 16층을 함께 눌렀다. 그래야 배달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기 때문이다. 하루는 여유롭게 엘리베이터를 타서 15층, 16층까지 올라갔다 내려가는데 쿠팡 아저씨가 씩씩거리면서 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왜 저렇게 험악한 표정일까 하고 봤더니 밑에서 계속 쿠팡 차 빼라고 경음기를 누르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빵빵 울려대니 마음은 조급한데 엘리베이터는 늦게 오니 초조했던 것이다.
나는 왜 엘리베이터에 집착했을까? 5분 일찍 집에 가서 쉴 수 있다는 것? 알량한 나의 5분을 위해 ‘양보’나 ‘협동’을 뒤로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하나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잡아먹으려 하다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뒤로 웬만한 저층은 그냥 계단으로 다녔다. 엘리베이터 못 잡으면 못 잡는 대로, 잡으면 잡는 대로 배달했다. 그런 걸로 부끄럽고 싶지는 않았다.
작은 것이 작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사소한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 눈을 들어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물론 우리가 작은 것을 결코 작은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그게 마치 전부이게끔 여기게 되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허용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여기서 머문다면, 삶의 기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마지막 우유를 배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상의 회복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하편입니다. 다음주에는 다른 수기가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