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나고 승리의 열광이 식으면 언제가 되든 현자의 시간이 찾아오게 된다. 현실 자각 타임, ‘현타’가 그것이다. 현타는 특히 이긴 쪽을 찍은 사람들이 도취에서 깨어나 냉정해지는 시간이다. 현타가 더 깊어지면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후회가 밀려오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전망한 비율이 역대 최저치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가 14일 나왔다. 다른 때보다 빨리 현타가 오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드는 결과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헤럴드의 의뢰로 지난 10~11일 윤 당선자의 국정 수행 전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52.5%, “잘하지 못할 것”은 41.2%였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잘할 것” 비율은 윤 당선자의 대선 득표율(48.56%)보다 겨우 4%포인트 높다.
리얼미터 역대 조사를 보면, 다른 당선자들은 당선 직후 “잘할 것”이라고 전망한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명박 79.3%, 박근혜 64.4%, 문재인 74.8%로, 각자 득표율보다 13~33%포인트 더 높은 기대를 받았다. 패한 후보의 지지층을 포함해 국민 다수가 대개 처음에는 당선자에게 기대를 걸고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윤 당선자의 국정 수행 기대치가 유독 낮은 건 무엇 때문일까? 다수가 기대할 만한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이명박 당선자에게 경제성장을, 박근혜 당선자에게 경제민주화를, 문재인 당선자에게 ‘촛불의 완성’을 기대했다. 반면 윤 당선자에게선 ‘묻지마 정권교체’ 이외에 나라의 미래를 위해 뭔가 해내겠다는 긍정적인 비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윤 당선자가 대선 기간 비전과 실력을 보여주기보다는 막말과 색깔론, 음모론 등을 동원해 선거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지층을 빼면 윤 당선자가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이 얼마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윤 당선자가 이제라도 다수가 공감할 비전을 다듬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현타의 도래는 더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선거 뒤 진 쪽을 덮치는 건 ‘멘붕’(멘탈 붕괴)일 것이다. 여긴 빨리 현타로 넘어가야 한다. 패배한 현실과 원인을 자각하고 절박하게 개혁·쇄신을 실천해야 또다시 멘붕이 오는 걸 막을 수 있다.
손원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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