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서한나 | 보슈(BOSHU) 공동대표·<사랑의 은어> 저자
젊은이는 눈빛과 기개로 서로의 사상을 안다. 머리 짧은 여자를 야유하는 남자와 야유로부터 상대가 성차별주의자임을 파악하는 여자. 기울어진 운동장을 유지하려는 자와 바로 세우려는 자, 이들이 투표로 의사를 밝혔다. 늘 있던 일이나 이번에는 하나가 달랐다. 유력 후보가 젊은 여성을 호명했다. 혜화역 시위부터 해일시위까지 전국이 들썩이는 동안에도 무시로 일관했던 정치권의 모습은 간데없고, 후보 하나가 젊은 여성에게 다급히 귀를 내밀었다.
목소리 내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았다. 국민청원과 시위, 동네 소모임과 지방자치단체 토론회에 여성들은 성실히 임했다. 여태 정치적 주체이자 시민이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음소거한 것은 세상이다. 하루 허망해하고 이틀 다잡았다. 매일 링크로 전해지는 여성 살해 사건, 디지털 성범죄, 가정 폭력, 단톡방 성희롱에 대기업의 채용 성차별. 분노가 무력감이 된 것은 이 모든 것에 뜨거웠던 적 없는 정치권을 볼 때였다. 여성들은 근육과 통장 키우기에 몰두했고, 수시로 청원했다. 태어난 이래 민주화된 적 없는 삶이다.
여성혐오가 이기는 대선이면 안 됐다. 일부 20대 남성은 여성가족부 폐지에 환호하며 여성혐오를 내세운 후보에게 마음을 뺏겼다. 논의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 여성들은 소신이냐 전략이냐 양 갈래로 내몰렸다. 투표 막바지에 20대 여성의 표심이 유의미한 변수가 되었고, 여성들은 황당한 가운데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힘쓰는 법.
극으로 갈라지는 광주와 대구의 표심을 보며 그곳의 여성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전화를 걸었다. 인구수도 지지율도 다른 곳에 사는 두 사람이 한곳에서 만났다. “선거판이 이렇게 된다면 나는 투사 같은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걸 예민하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방선거 전까지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대선 끝나고 당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다들 조금씩 비슷한 마음인가 봐요.” 그는 미래를 점쳤다. “어쩌면 되게 많이 다르겠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어요. 이대로 관심이 높아지면 5년 후에는 정말로 달라지지 않을까요.” 대구에서 전했다.
“새벽 1시쯤인가 그때부터 득표율이 뒤집어졌죠. 어쩔 수 없구나, 한국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인구수가 차이 나고, 노년층의 고집을 이길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시간이 가고 지금 20∼30대 여성들이 50대가 되면 바뀌겠죠.” 5월이 되면 시내가 더 조용해진다는 광주에서 그가 말했다.
세대를 막론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높던 전남에서도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눈에 띈다. 전국에 비하면 낮은 것 아니냐 되묻겠지만, 광주 어른들은 바뀐 분위기에 놀랐다. 지역의 역사와 맥락을 뛰어넘어, 20대 남성은 여성혐오를 대표하는 정당에 절개를 바쳤다. 당선이 확정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한 이용자의 게시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여가부를 폐지한다는 말에 뽑긴 했는데,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며 혼란한 모습을 보였다.
여성들이 올림픽 선수의 해보자 정신을 받아안은 것은 필연이다. 이들은 하루를 우직하게 살아낼 이유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원한다. 여성들은 효능감을 느끼기로 했다. 응시하고 타격하며 나아가기로 했다. 오히려 좋아, 깨닫는 사람이 늘어날 테니까. 이 정신으로 5년 뒤 큰 파도가 한번 칠 것이다.
만화영화의 주인공은 무겁고 힘센 녀석이 아니라 끝까지 안 죽는 녀석이다. 여자들은 먹고 자고 빙글빙글 돌며 시위 가보자고, 입당 가보자고, 승진 가보자고… 주문을 왼다. 단순하고 지독할 5년이 흥미로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