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가장 작은 이를 기준으로

등록 2022-03-21 18:11수정 2022-03-22 02:32

[숨&결] 이안 | 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못 보던 부스러기가 자꾸 눈에 띈다. 치우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알고 보니 오래된 성경 겉장의 장정이 삭으며 생긴 잔금에서 떨어진 부스러기였다. 성당에 나가지 않고 ‘쉬는 교우’가 된 지 오래여서 성경도 그만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말이 거기 어디쯤 들어 있다는 걸 간신히 기억해 냈다. ‘우리 중에 가장 약한 자를 기준으로’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기도처럼 간절히 불러내고 있었나 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을 기준은 있어야겠고, 이 기준이 조롱받거나 무시될 때 여기 맞서야 한다는 마음이 같이 생겨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검색을 거쳐 찾아본 원문은 좀 달랐다. 굶주린 이, 목마른 이, 나그네,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 말하자면 긴급한 구제가 필요한 이들을 당신의 형제로 지칭한 다음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며,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가장 작은 이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든 위대한 종교와 사상 이래로 지상의 혁명이요 천국의 꿈이 아니었을까.

해방 직후, 윤석중은 이런 작품을 썼다. “길가에/ 방공호가 하나 남아 있었다./ 집 없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거적을 쓰고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아이 하나가/ 제비 새끼처럼 내다보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독립은 언제 되나요?”(전문) 제목이 ‘독립’이다. 두번 반복되는 “그 속에서”는 사람으로서 차마 살 수 없는 곳이란 뜻으로 읽힌다. 방공호 “속”이지만 이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다. “길가”로 내몰린, 바닥도 모자라 구덩이를 파고 더 내려간 밑바닥에서 최저선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속에”는 어린이도 있기 마련이다. 윤석중이 전하는 것은 “제비 새끼처럼” 연약한, 그래서 긴급한 돌봄이 필요한 당대의 ‘가장 작은 이’의 목소리다. “독립은 언제 되나요?”는 어린이의 귀여움을 담은 목소리가 아니라 매우 성숙한 시적 주체의 문제의식이 담긴 말이다. 우리 가운데 가장 작은 이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독립되었다는 나라의 모습이 독립 이전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인 것이다. 가장 작은 이에게 도착하는 볕의 밝기와 온기가 그 나라의 사회 제도적 온도이자 공동체가 합의한 약자를 향한 윤리의 총합이다.

해방을 두어달 앞둔 5월25일, 권태응은 어린이에 도착한다. 수백편의 시조와 단시, 네편의 단편소설 습작을 거쳐 그는 마침내 이렇게 노래하는 사람이 된다. “키가 너무 높으면,/ 까마귀 떼 날아와 따 먹을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땅감나무’ 전문) 땅감은 토마토다. “까마귀 떼”로 상징되는 강자의 세계로부터 어린이-약자의 세계를 살피고 돌보며 지키는 땅감나무 같은 시인이 되겠다는 소망을 봉인해 둔 작품이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강원도의 시인 이화주는 최근 발표한 작품에서 지난해 여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의 엑소더스를 이렇게 전한다. “생지옥 카불 공항// 높이 치켜든 손, 손, 손, 손, 손, 손, 손, 손, 손, 손/ 아기를/ 손에서 손으로/ 넘겨 주고 넘겨 주고 넘겨 주고 넘겨 주고 넘겨 주고 넘겨 주고// 아기가/ 철조망을 넘었다./ 흰 구름처럼”(‘손에서 손으로’ 전문). 이 아프가니스탄 아기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기들을 떠나보낸 어른들의 운명은?

어린이는 어린이만이 아니라 여성, 장애인, 노인, 성 소수자, 가난한 이, 난민 등 긴급하고도 상시적이며 제도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한 공동체 속 가장 작은 이의 대명사다. 이들을 보살피는 데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어린이에게 벌어진 일은 어른에게도 벌어지며 여성에게 벌어진 일은 남성에게도 벌어진다. 우리 가운데 가장 작은 이를 기준으로 이 세계는 영구적으로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국민의힘, 윤석열과 절연하고 진상규명 협조해야 1.

[사설]국민의힘, 윤석열과 절연하고 진상규명 협조해야

사악한 자, 뻔뻔한 자, 비겁한 자 [박현 칼럼] 2.

사악한 자, 뻔뻔한 자, 비겁한 자 [박현 칼럼]

[사설]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 ‘헌정유린 단죄’ 진정한 첫걸음 3.

[사설]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 ‘헌정유린 단죄’ 진정한 첫걸음

‘국민의힘’ 보존 법칙?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4.

‘국민의힘’ 보존 법칙?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트럼프와 윤석열의 ‘스톱 더 스틸’ [유레카] 5.

트럼프와 윤석열의 ‘스톱 더 스틸’ [유레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