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프리즘] 박수혁 | 전국팀 기자
20대 대선 이틀 뒤인 지난 11일 한 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신문 9면을 보고 전화했다. <한겨레>에 어울리지 않는 지면”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한겨레> 9면 전면에는 ‘20대 대선 광역 선거구별 득표율’ 이미지가 실렸다. 전국 지도에서 영남과 강원, 충청, 서울지역은 대부분 국민의힘 당색인 빨간색으로, 호남과 제주, 경기 등은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각 지역에서 다수를 차지한 정당의 색으로 해당 지역을 채우는 식의 그림이었다. 방송사들의 선거 개표 방송에서도, 선거가 끝나면 각종 언론이 선거 결과를 지도로 표현할 때도 ‘늘’ 등장하는 그림이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그는 “이런 식의 지도는 우리나라 정치 폐단 중 하나인 승자독식·거대양당 위주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할 뿐 아니라 고착화하는 데도 일조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파랗게 표시된 광주에도 국민의힘을 찍은 사람이 있고, 대구에서도 민주당을 찍은 사람이 있다. 심지어 노란색을, 녹색을 찍은 유권자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지도가 유권자의 다양한 정치적 선택의 결과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생각하지 못한 지적에는 공감됐지만 ‘대안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내 생각을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색맹검사표’ 방식을 사용해 선거 결과를 표시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색맹이나 색약을 검사하는 데 사용하는 검사표처럼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 녹색 등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각 지역에 점을 찍어 채우면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을 더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광역시·도에서 가장 근소한 표 차이를 보인 인천을 예로 들면, 민주당은 48.91%를 얻어 국민의힘(47.05%)에 불과 1.86%포인트 앞섰다. 아무리 표 차이가 적어도 지도는 승자의 색으로만 채워진다. 하지만 색맹검사표 방식을 사용하면 국민의힘뿐 아니라 2.77%(5만1852표)를 얻은 정의당, 0.05%(1116표)를 얻은 기본소득당 등과 같은 정당을 선택한 유권자의 표심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양강 구도를 보인 이번 대선과 달리 19대 대선에서는 색맹검사표 방식이 더욱 의미가 있다.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41.08%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4.03%로 2위를 차지했고, 안철수(21.41%), 유승민(6.76%), 심상정(6.17%) 후보 등도 선전했다. 하지만 <한겨레>(2017년 5월10일치 5면)와 대부분 언론은 대구·경북·경남은 빨간색, 나머지는 파란색으로 채운 전국 지도를 보여줬을 뿐이다. 그는 “지방선거도 아닌 대선에서 지역별로 승패를 정해 이분화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냐. 이미 인구분포도 등과 같이 점의 밀도로 수치나 양을 나타내는 통계지도인 ‘점묘도’가 있으니 색맹검사표 방식을 구현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꼭 색맹검사표 방식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방식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물론 언론의 선거 보도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구수를 고려해 선거 결과를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각 선거구를 같은 면적의 육각형으로 구현한 카토그램 도입이 한 예다. 수도권에 견줘 유권자가 적지만 면적은 넓은 강원도나 경북 같은 곳에서 승리하면 지도에서 파란색이나 붉은색이 더 많이 보이는 착시를 막는 좋은 방법이다. 19대 대선 당시 전국 지도를 그대로 보도한 <한겨레>도 이번 대선에선 카토그램을 사용했다.
이번 대선은 0.73%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아무리 ‘선거는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과 같이 1등만 표시하고 부각하는 지도는 문제가 있다. 언젠가는 선거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 지도에서도 무지개를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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