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는 더 많은 언니를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더 많은 이들의 든든한 언니가 되고 싶어요. 근데 언니. 저 조금 지쳤어요. 아니, 사실 지쳤다는 말도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뭘 해봤어야 지칠 텐데. 그렇죠? 저는 그냥 무서워요. 방송을 너무 사랑해서 이렇게 언니랑 얘기하고 있는 건데, 이젠 티브이가 두려워요.
국내 방송작가는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정규직은 0.1%(10명)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회원들이 팻말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유정 | 방송작가
이제 마지막이에요. 이번엔 늘 론칭이 걱정인 신규도 아니고, 중간에 사라질까 겁나는 레귤러도 아니에요. 이미 한 시즌을 방영한, 회차가 정해진 프로그램의 시즌2 기획에 합류했어요. 시즌1 시청률도 좋았고, 실제로 저도 좋아했던 방송이거든요. 이제 제대로 방송해보는구나 싶었죠.
딱 한 달째 되던 날, 밤새워서 회의자료를 준비하고 2시간이나 일찍 가서 준비해놨어요. 메인 피디님 들어오시길래 회의록을 받아 적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올렸어요. “미안해요. 무기한 연기가 됐어요. 페이는 이번 주까지로 올릴게요.” 토독~ 그게 무슨 말인지 도통 감도 못 잡은 채, 받아 적었어요. 쪽 윤곽, 글씨체까지 정갈하게 맞춰놓은 회의록 파일에 해고 소식을 받아 적는 막내 작가라니. 진짜 웃기죠.
그렇게 다시 한번 실직자가 되었고, 페이 지급이 늦어졌지만 마지막에 미안해하던 얼굴이 눈앞에 선해 마냥 기다렸어요. 하지만, 그 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3개월이 넘어갔어요. 참다못한 저는 막내 피디에게 페이에 대해 물어봤는데, 연출진한테는 이미 실직자가 된 주에 페이 정산이 끝났다는 거예요. 왜 저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아니, 왜 작가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너무 억울했어요.
그날 밤 몇 번을 울면서 썼다 지웠다 하다 메인 피디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정말 돈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났어요. 그때 피디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회사에서 지급이 늦어진다. 정 급하면 돈을 빌려줄까?” 피디들은 모두 받았다는 사실을 제가 아는지 몰랐나 봐요.
나중에 온 계약서엔 방송 론칭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페이가 삭감까지 되었더라고요. 그땐 호의라는 게 더는 남아 있지 않았고 결국 국가기관에 신고를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말았어요. 그 말을 할 때, 너무 화가 났는데 그러자마자 처음 계약했던 전체 금액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래도, 메인 피디님이 법은 무섭다고 느껴서 다행이었지 뭐예요.
언니. 저는 ‘작가’라는 호칭도 너무 좋지만, ‘언니’라고 처음 부르던 그 순간이 너무 좋았어요. ‘진짜 방송작가’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마지막 일 이후, 급여를 받지 못해 돈이 부족해도 지탱할 수 있었던 건 선배들의 선의였어요. 근데, 언니들이 어필을 해주셔도 저는 2년 차 막내치고 나이도 많고, 방송은 7개밖에 올리지 않은 물경력이라 다들 흘려보내시는 거 같더라고요. 더는 언니들께 연락드리기도 죄스러워졌고요.
언니. 최근에는 사람 많은 곳에서 종종 쓰러졌어요. 입석으로 탄 광역버스에서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사람들의 눈동자를 피하려고 머리로 바닥까지 감추었어요. 지금도 신경안정제를 삼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12시간짜리 영상을 하루 만에 프리뷰를 풀다 인대가 파열돼도, 모질게 굴던 선배의 목소리가 모든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는 공황장애를 얻었을 때도 행복했어요. 실패할 때만 ‘프리’해진다 해도, 스태프 스크롤 속 제 이름이 너무 짜릿했거든요.
그런데요, 언니. 조금 전에, 베란다 난간에 서 봤거든요. 비가 온 이후여서인지 하늘에 별이 잘 보이더라고요. 쓰러지고 사라지고 감춰지는 2년이었어요. 너무 괴로워서, 저 별처럼 한자리에서 오래도록 빛나고 싶더라고요. 제가 올라갈 자리를 점찍어두려고 몸을 내밀다가 마침 언니 전화에 껑충 뛰어 내려왔어요.
언니. 저는 더 많은 언니를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더 많은 이들의 든든한 언니가 되고 싶어요. 근데 언니. 저 조금 지쳤어요. 아니, 사실 지쳤다는 말도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뭘 해봤어야 지칠 텐데. 그렇죠? 저는 그냥 무서워요. 티브이(TV)는 오래전에 코드를 뽑아놓고 살았어요. 방송을 너무 사랑해서 이렇게 언니랑 얘기하고 있는 건데, 이젠 티브이가 두려워요. 공무원 시험도 알아봤어요. 언니가 항상 말씀해주셨죠. 어딜 가서도 잘할 거라고. 그렇지만 제가 상암을, 여의도를, 목동을 떠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무꾼이 훔친 선녀의 옷을 되찾듯 기회만 닿는다면 다시 전 카메라 뒤로 달려갈 것 같아요.
아, 지금이요? 아르바이트 구하는 천국 보고 있어요. 면접은 안 잡히고, 다시 방송해도 잘릴까 봐 무서워요. 이제 27살인데…. 방송국에 있느라 토익도, 에이치에스케이(HSK·중국어 능력시험)도 만료돼서 다시 학원도 다녀야 하고 카드값이랑 휴대폰 요금이 밀렸네요. 말이 길었죠. 감사합니다. 항상 신경 써주셔서. 네네.
네? 많이 겁나고 무섭겠지만 자리 나면 연락 주시겠다고요? 전 너무 좋죠, 언니. 진짜 너무 감사드려요. 언제라도,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만간 상암에서 봬요. 네네. 들어가세요. 언니.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연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 실립니다. <한겨레>는 해마다 수상작 등 응모작 일부를 게재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