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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당신의 얼굴

등록 2022-03-27 18:20수정 2022-03-28 02:00

[서울 말고] 명인(命人) |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6년 전에 작은 밭과 집터를 샀지만, 소유권 이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집터를 2년이나 묵히는 동안, 옆지기는 매일 읍내에서 밭으로 출퇴근하며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4년 전부터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가끔 거들 일이 있을 때만 마을에 들렀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읍내 아파트에 살면서 마을 사람인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채로 어정쩡하게 6년을 지낸 거다.

작년 봄엔 옆지기가 낙상 사고로 허리를 다쳐 꼼짝을 못 했다. 그러다가 몇 달 만에 현장을 둘러보러 간 날이었다. 일하다가 뒷정리도 못 한 채로 구급차에 실려 왔으니, 집을 짓다 만 공사 현장 꼴이 말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당연히 배터리가 방전됐을 줄 알았던 트럭에 시동이 걸렸고, 여름내 내린 비에 엉망이 되어 있을 줄 알았던 자재들도 꽤 건질 게 많았다. 마을의 누군가는 이따금 들러 차에 시동을 걸어주었고, 또 누군가는 비에 젖을 자재들을 천막 천으로 덮어주었던 거다. 갑자기 “아이고!” 소리에 돌아보니 골목을 지나시던 마을 할머니다. “인자 괜찮은 것이제? 아이고 고마버라, 아이고 고마버라.” 그렁그렁하던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까지 쏟아졌다. 마을 할머니들 말씀은 구성진 사투리라 아직 반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옆지기 손과 내 손을 번갈아 잡아가며 연신 고맙다 하시던 할머니의 새까맣고 주름진 얼굴은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두 계절이 지나고서야 다시 나타난 옆지기를 본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달려와서 “잘했다”, “고맙다” 했다.

옆집도 아랫집도 윗집도, 시골 마을의 이웃보다 훨씬 가까운 이 아파트에서 4년째 살고 있지만, 아무도 옆지기가 다쳤는지 모르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303호와 403호로 대표되는 이웃과 낮은 담장 너머 언제고 얼굴을 볼 수 있는 이웃의 차이일까?

시골 사람들은 된통 싸워도 마지막 선을 넘진 않는다고들 한다. 농사짓는 삶이란, 그리고 좁은 지역에서의 삶이란 그런 거라고 한다. 싫은 사람도 안 보고 살 수 없고, 원수가 되어도 상대의 몫을 몽땅 빼앗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진 것이 지역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삶 말이다.

번호를 매겨 숫자로 표현되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1번남·1번녀로 지칭되는 86.1%의 사람들과 2번남·2번녀일지도 모르는 11.4%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식의 번호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한참을 찾아야만 볼 수 있는 0.05%의 사람들도 구체적인 얼굴을 마주 대하면 그들에게 부여된 숫자의 속성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일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숫자보다 훨씬 복잡하고 풍요로우며 저마다 고유한 존재니까.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삶이 언제나 평화롭고 아름다울 순 없다. 이해관계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살아온 환경도 문화도 관습도 다른 사람들, 심지어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가부장적 문화와 위계질서가 살아 있는 마을임에랴. 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타자는 가난한 자와 나그네, 과부와 고아의 얼굴을 하고 있고, 동시에 나의 자유를 정당화하라고 요구하는 주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라고 썼다.

끊임없이 숫자로 얼굴을 지우는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립되고, 자주 숫자 대 숫자로 적이 되며 살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나는 아직 마을에 입주도 하지 않은 이웃의 고통에 눈물을 쏟던 할머니의 얼굴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얼굴에서 숫자로는 환원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환대의 의무를 떠올린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가 살 용기를 낸다. 이 사회가 끊임없이 지우는 당신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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