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김준 |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연수연구원
꿀벌이 실종되고 있다. 올해 초, 한국에서만 수십억마리에 이르는 꿀벌이 벌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원인은 다르지만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은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꿀벌만의 문제도 아니다. 생물 다양성은 심각한 수준까지 떨어져서, 척추동물은 1970년대와 비교하면 개체군의 약 70%가 감소했다. 크기가 작아 연구하기 어렵거나 관심을 받지 못해 연구되지 못한 다른 생물들도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을 것은 분명하다. 지구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천만종 이상의 진핵생물 중에 고작 10만여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 중에서도 이미 3만종 이상이 멸종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섯번째 대량 멸종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렇게 사라지고 있는 생물에 대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문명이 이 생물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생물은 아닐지언정, 인류 문명은 수많은 생물을 필요로 한다. 당장 밥상 위에 오르는 거의 모든 것은 생물 그 자체이거나 생물의 부산물이다. 야생에 있던 작물과 가축의 조상들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덕분에 우리는 지금처럼 풍부한 식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생물들은 때론 감염병으로 심각한 위협을 받기도 했다. 수박과 재래꿀벌이 대표적이다. 감염병이 도는 바람에 이 생물들은 절멸에 가깝게 수가 줄었지만, 유전적 다양성이 높게 유지되던 야생 집단 중에는 그 감염병에 걸리지 않는 집단도 존재했다. 이 야생 유전형을 도입한 덕분에, 수박과 재래꿀벌은 지금도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야생에서 감염병에 저항성이 높은 유전형을 들여올 수 없었다면 가능할 수 없었던 일이다.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먹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생물은 그 자체로 진화라는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특정 세균을 죽이는 페니실린이나 진통제로 쓰이는 아스피린처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약물이 대표적이다. 또 피시아르(PCR·유전자증폭 검사)의 핵심 요소인 택(Taq) 중합효소와 살아 있는 생물의 유전자 조작도 가능케 하는 크리스퍼(CRISPR) 등 생물 유전자 연구를 훨씬 손쉽게 바꿔준 단백질은 모두 생물에서 유래했다. 생물이 오랜 세월 진화하며 축적한 유전자와 그 부산물이 인류를 구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도 진핵생물과 수십억종에 이르는 세균과 고균 중 0.1%도 채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하지 못한 수많은 생물에 어떤 새로운 기능을 지닌 유전자가 존재할지는 추정할 수 없을 정도다. 아는 게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많은 생물을 더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관련 연구는 이미 시작됐다. 2018년 출범한 지구생물유전체(Earth BioGenome)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업은 20세기 말 시작된 인간유전체 사업과 비견되며 생물학계의 달 탐사로 불린다. 5조원이 훌쩍 넘는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하는 거대 생명과학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지금까지 알려진 100만여 진핵생물의 유전체 정보를 모두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끝에서, 우리는 생물이 진화한 과정을 훨씬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진화 속에서 탄생한 온갖 유전자원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거대 과학은 그 대가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이나 수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해야만 하는 고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가 끝났고, 윤석열 당선자는 정권과 관계없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장기 연구과제를 제도화할 것을 약속했다. 그 과제에 기초 생명과학 연구가 포함되길 기대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굴될 생물의 유전 정보로부터, 우리 삶을 지금과 현저히 다른 형태로 바꿔낼 수 있을 새로운 산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