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8년 전인 2014년 12월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전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날 전장연은 리프트에 직접 타 그 위험성을 알리려고 했으나, 리프트는 고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 프리즘] 정환봉ㅣ 소통데스크 겸 불평등데스크
봄이다. 서울 벚꽃은 일주일쯤 뒤 활짝 핀다고 한다. 올해도 아름다울 것이 분명하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일지, 송파구 석촌호수일지는 모르겠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경기 하남의 산곡천 길일 수도 있다. 어디서건 올해도 멋진 풍경을 맞이할 것을 기대하며 설레는 중이다.
다만 그 자리에 섰을 때 나는 3년 전 들었던 말을 떠올릴 것이다. 2019년 4월, 나는 경기 안산으로 향했다. 세월호 생존 학생이었던 장애진씨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4월16일 그때도 벚꽃이 만개했어요. 학교 안에도 벚나무가 많아 그 밑에서 친구들하고 이야기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벚꽃을 보면 슬퍼져요.” 절정을 맞이한 벚꽃이 누군가에겐 지독한 슬픔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깨달았다. 그 뒤로 봄이면 달뜬 연분홍 꽃잎 무리에 들뜨면서도 마음 한편엔 아린 감정이 남았다. 그것은 불행이 아니었다.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다른 이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뼘쯤 더 인간다워질 기회를 얻었다. 3년 전 장애진씨의 말을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벚꽃뿐 아니다. 아름답고 멋진 것은 이면을 가지곤 한다. 서울올림픽이 그랬다. ‘한강의 기적’과 ‘말끔한 서울’을 세계에 알릴 기회라는 이유로 시내 곳곳에선 철거가 이뤄졌다. ‘도시 정비’라는 구실이 붙었다. 도시 빈민이 많이 살았던 ‘상계동 173번지’ 일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1986년부터 1987년 사이 헐렸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년)은 “88올림픽을 민족의 영광, 인류의 축제라 부르며 온통 법석들이다. 하지만 우리 상계동을 비롯한 200여 군데 철거민들에게 올림픽은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원망의 대상일 뿐이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최근까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시위를 벌였던 지하철은 비장애인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러운 대중교통이다. 하지만 장애인에겐 아니다. 일부 역사의 엘리베이터 미설치 문제만이 아니다. 출구가 사유지로 나 있어 민간이 운영하는 엘리베이터 중 일부는 관리가 되지 않아 오랫동안 멈춘 곳이 많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사에서도 환승은 늘 어렵다고 한다.
“희망 가득 한아름 안고서 안전하고 편안한 곳으로 행복 찾아 나르는 우리 친구 서울교통공사”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로고송 가사다. 최근 서울교통공사의 홍보실 직원이 3월 작성한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문건이 공개됐다. 최근 지하철 시위를 겨냥한 문건에는 “공사는 실질적 약자, 실점방지&디테일 발굴 중요… 여론전 승부는 디테일이 가른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교통공사가 모든 시민의 친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하철만 문제는 아니다. 2020년 기준 전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은 27.8%에 불과하다. 고속·시외버스 중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버스는 서울과 충남 당진만 오간다.
이런 와중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연일 전장연과 맞서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지하철 시위를 “불특정 다수의 일반 시민의 불편을 야기”하고 “서울시민을 볼모로 잡는 시위”라고 정의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 이동 경로는 3호선 경복궁역→4호선 충무로역→4호선 혜화역이었다. 4호선의 경우 출근 시간대 강남→강북 방향 이동임에도 이 대표는 “결국 불편을 주고자 하는 대상은 4호선 노원, 도봉, 강북, 성북 주민”이라며 억지를 부린다.
‘아름다운 벚꽃’이나 ‘올림픽 성공 개최’처럼 ‘불편 없는 대중교통’은 좋은 말이다. 문제는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벚꽃이 슬플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처럼. 전장연은 최근 지하철을 타는 시위를 멈췄다. 지하철은 매끄럽게 달린다. 이젠 이 대표가 그 원활함 이면의 고통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면 좋겠다. ‘벚꽃 엔딩’쯤에는 이기기 위해 장애인단체마저 갈라치는 것이 아닌 아린 마음들과 함께 걷는 이 대표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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