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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참을 수 없는 권력의 가벼움

등록 2022-04-05 16:38수정 2022-04-06 02:38

지난 2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20대 남성들이 꾸린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지난 2월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20대 남성들이 꾸린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세상읽기] 신진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강준만 교수는 지난달 28일치 ‘20대 남성은 정치적 선동에 놀아났나?’라는 제목의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최근 출간된 나의 저서인 <그런 세대는 없다>에 대한 논평과 더불어 중요한 토론거리들을 제안했다. 서두에서 “몇가지 꼭 생각해볼 점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는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이미 그의 사유를 동행하기 시작했으며, 왜곡된 세대론의 비판에서 “한걸음 더 들어간 실천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이 자리에서 논의를 진전시켜보려 한다.

첫째, 강준만 교수는 열성적 정치관여층의 점증하는 영향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20대 남성이 보수정치권의 선동에 놀아난 게 아니라, 활동적인 일부 20대 남성들이 정치권을 움직인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나는 2000년대 한국 정치의 핵심이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주의와 그에 따른 정당-시민정치 간의 역동적 상호작용이라고 주장해왔다. 이것이 이번 저서에서 정치 관련 주장의 핵심이었고, 다음 저서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현상은 ‘20대 남성’이라는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으며, ‘1%’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노사모’ ‘박사모’ ‘문프’ ‘개딸’ ‘건사랑’ 등 각종 정치팬덤, 유권자의 20%에 이르게 된 당원 수 급증 등 최근 경향은 정당정치의 환경을 크게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참여 행동들이 거대 양당 대결 구도의 구조적 틀 안에서 작동하며, 대통령에 대한 지지 또는 비토를 핵심으로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제도권력의 책임이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둘째, 언론이 시장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이슈의 상품성을 좇게 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세대론은 풍부한 뉴스 가치를 갖고 있지만 불평등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공감이 되는 고민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식을 더 밀고 나가서, 이슈들의 뉴스 가치를 결정하고 변화시키는 환경 요인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세대론 자체에 높은 뉴스 가치가 내재된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 그것이 상품이 된다.

일례로 나의 분석 결과는 세대갈등론이 항상 뉴스거리였던 것이 아니라 2015년에 폭증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성과 압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를 ‘청년 비정규직’ 대책으로 포장한 결과였다. 2019년의 세대불평등론의 폭발 때도 일부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이 열광적으로 소비한 데 반해, 진보언론이나 <동아일보> 등은 달랐다. 무엇이 뉴스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상이한 접근들의 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궁극적으로 우리는 불평등 문제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을 어떻게 촉발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화두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의 문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진단해보자면, 나는 현시점의 문제가 불평등 이슈 자체에 대한 무관심이라기보다는 그것의 잘못된 이슈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불평등은 언제부턴가 ‘장사가 되는’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의 즉각적인 분노와 몰입, 감정적 동일시를 끌어내는 데에 이만한 소재가 없다. 문제는 그것의 내실이다.

‘불평등’ ‘불공정’ ‘공정성’ 같은 이슈들은 최근 몇년 사이에 정치공방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고 신문지면을 뒤덮는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담론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고, 중년의 임금생활자들을 해고하고, 저성과자의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 사실이 지금 상황의 주목할 만한 새로움이다. 이제는 정치권, 언론, 기업 등 제도권력이 불평등이라는 이슈까지도 자신들의 맥락 안으로 편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나의 책의 전반부에서 각 세대 내의 불평등 현실과 한국 사회 상층계급의 범세대적 구성을 보여줬다면, 책의 후반부에서 궁극적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계급불평등 현실을 은닉하고 왜곡하는 담론권력의 헤게모니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였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경제·문화권력을 가진 집단들이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의제를 설정할 수 있는 강력한 자원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권력층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현실을 대하는 방식은 참을 수 없이 가볍기만 하다. 이 현실을 바꾸는 주체적 담론정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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