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16일 13대 대통령 선거에선 군부 출신인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됐다. 군사독재 타도를 외쳤던 86세대인 당신이 처음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였다. 대선 며칠 뒤인 23일 ‘민주화는 한판 승부가 아닙니다’라는 한겨레 창간준비위원회의 광고 문구는 절망에 빠진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됐다. 1992년 12월18일 14대 대통령 선거에선 3당 야합의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가 당선됐다. 대선 직후인 22일 박재동 화백의 만평 ‘한겨레 그림판’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사람들이 출근하는 모습이 실렸다. 당신은 이 만평을 보며 위로받았다. 2012년 12월19일 18대 대통령 선거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일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혁명 시대에 왕당파와 공화파의 대결을 보여줬는데, 당신은 이 영화를 보며 상실감을 달랬다.
지난달 9일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 같은 진보 진영 후보를 찍은 당신은 한달이 지났지만 허탈감은 여전하다. 그러다 2030세대의 보수화에 화살을 돌린다. 당신은 2030 때 힘들고 가난한 이들 편에 선 대선 후보에게 투표했는데 지금 2030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며 분노한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요즘 2030은 절박하다. 그들은 온갖 스펙을 쌓아도 회사에 들어가기 힘든 고용절벽에 놓여 있다. 절박할수록 뭔가 바꾸고 싶어 한다. 한번 바꿔야 뭔가 달라질 거라는 실리적인 이유에서 투표했을 것이다. 그렇게 2030은 기성세대의 바람과 빗나간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데모하지 마라, 네가 데모한다고 세상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부모 말을 들었나.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선 당신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은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았다는 것을. 그 메아리는 작지만 벌써 들린다. 당신이 20대 때 노동과 여성 해방을 위해 불렀던 ‘딸들아 일어나라’를 이제 당신의 개딸들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메아리처럼 되받아 부르고 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개딸들은 혐오와 배제에 맞서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엔 그들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위로를 받아보시라.
정혁준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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