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송우용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관리자가 대답했다.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트럭 한 대 다 채우고 물 마시러 가세요.” 휴식 시간 같은 건 애초에 없다. 컨베이어 벨트가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상차의 경우 택배로 트럭 한 대를 다 채우거나, 하차의 경우 트럭 한 대의 택배를 다 내리면 다음 트럭이 올 때까지 5~10분 동안 요령껏 쉬어야 했다.
2019년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대학교 수시모집 결과가 하나하나 나오는 시기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대학에 합격하였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나는 대학 등록금을 어떻게 충당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인구 4만명밖에 되지 않는 강원도 시골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대부분 지인을 통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고, 애써 찾아간 곳은 내정자가 있었다. 3개월이 안 되는 겨울방학 기간 동안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다. 고민 끝에 입학할 대학이 있는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로 했다.
그렇게 경산시 영남대역 근처에 있는 고시원에 월 45만원을 주고 입주하였다. 누군가는 그곳도 지방이라 생각하겠지만, 본가에서 떨어져 상대적으로 좋은 인프라와 환경을 체감하니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설렘도 잠시, 나는 곧바로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디 돈 많이 주는 곳 없나?”
우선순위는 돈이었다. 주변 지인들은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돈보다는 노동 강도가 약한 곳, 복지, 집과의 거리 등을 고려하여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하지만 나는 일이 힘들어도 돈만 많이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 경험이 될 C회사의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택배 상하차라 함은 택배 터미널 등 물류센터에 도착하는 상품들을 트럭에 싣고 내리는 일이다. 상하차 알바는 흔히 인터넷에서도 ‘지옥의 아르바이트’, ‘북한에 아오지 탄광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택배 상하차가 있다’ 등 소문이 돌 만큼 힘든 일로 꼽힌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다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음날 경산에서 대구로 이동한 뒤 다시 통근버스를 타고 C사가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버스는 거의 만석이었다. 대구에서 대전까지 버스로 2시간30분이 소요되었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시계는 오후 5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버스에서 하차한 사람들은 각 반장 앞에서 집합을 하는데, 처음 온 사람들은 출석체크 앱 다운과 안면인식 등록, 몸 상태 점검, 안전 교육을 마친 뒤 일터에 투입된다. 첫 출근날 내가 상차 역할을 배정받은 시간은 오후 6시30분쯤이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쏟아지는 택배를 남자 두 명이서 화물트럭에 차곡차곡 싣는 일이었다.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채 엄청 밀려오는 택배를 정신없이 트럭에 실었다. 잠시 뒤 누가 소리를 지른다. C회사의 정규직 관리자였다. 그 사람들은 목에 명찰 같은 것을 걸고 있었다.
“그딴 식으로 일해서 집 가겠어요?!”
처음에는 내게 하는 소리인 줄 몰랐다. 관리자가 나한테 직접 오더니 “그렇게 일할 거면 집이나 가라”, “누가 일을 그렇게 하냐”, “일도 참 못하게 생겼다” 등의 말과 욕설을 1분가량 쏟아냈다. 나는 “죄송합니다”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다시 컨베이어 벨트 앞으로 돌아가 옆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 어떻게 일하는지 어깨너머로 살펴봤다. 그렇게 요령이란 걸 조금씩 터득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어느덧 트럭의 절반을 택배로 채워 넣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옷은 이미 모두 젖었다. 목이 말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었는데, 일하기 전 갖고 간 생수병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또 욕먹기 싫어서 웬만하면 참고 일하려고 했지만, 탈수로 쓰러질 것 같아서 결국 관리자한테 갔다. 나름 매우 간절하게 말했다. “잠깐 물 좀 빠르게 마시고 와도 될까요?”
관리자가 대답했다. “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트럭 한 대 다 채우고 물 마시러 가세요.” 휴식 시간 같은 건 애초에 없다. 컨베이어 벨트가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상차의 경우 택배로 트럭 한 대를 다 채우거나, 하차의 경우 트럭 한 대의 택배를 다 내리면 다음 트럭이 올 때까지 5~10분 동안 요령껏 쉬어야 했다. 그 전까지는 절대 쉴 수 없었으며, 일하는 동안 나가는 방법은 쓰러지는 것밖에 없었다.
트럭 한 대를 다 채운 뒤 비로소 물을 마시러 갈 수가 있었다. 목을 적시고 여분의 물까지 챙겨 오면서 잠깐 주위를 둘러보는데, 상하차 노동자를 상대로 여기저기서 관리자들이 소리 지르고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보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정도로 보이는 관리자들이 40~50대 일용직 노동자들한테 욕설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위이잉~’ 계속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사람들은 겨울 찬 공기를 맞으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연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 실립니다. <한겨레>는 해마다 수상작 등 응모작 일부를 게재해왔습니다.
2020년 10월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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