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할머니에겐 혈연 가족이 없다. 15년 전 내가 일하던 병원의 환자였다. “콧줄이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고 싶어.” 며칠 전 ○○요양원에 입소했다기에 안부 전화를 한 나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중풍이라도 왔는지 걱정이 되어 요양원 관계자에게 연락해 콧줄을 한 이유를 물었다. 큰 병원 가서 컴퓨터단층촬영을 비롯해 검사도 다 해봤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전혀 못 드시냐고 물었다. 그것도 아니란다. 물도 마시고 군것질도 하는데 식사를 못해서 콧줄을 했다고 한다.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식사를 못한다고 콧줄이라니. 너무 의아했다. 확인해보니 할머니는 입소해서 소변줄(요도관)도 한 상태였다. 콩팥 기능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입소 전 집에 있을 때 심한 설사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식사를 못해 탈수가 되면서 소변량도 줄었을 것이다. 탈수를 교정해주면 당연히 소변량은 늘어날 건데 왜 이렇게까지…. 의사인 나조차도 이 모든 처치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애껴 먹을게. 딸기도 사달라고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집은 빼지 말아줘.” 할머니는 애원을 했다. 수년 전 할머니가 처음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때를 기억한다.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다 했다. 너무 좁지 않으냐는 말에 ‘이 정도면 대궐이야’ 하셨다. 요양원 입소 며칠 전에도 두 사람이 앉으려면 한 사람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야 했던 ‘대궐 같은’ 집에서 우리는 즐겁게 피자를 시켜 먹었다. 하지만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다. 돌봐줄 사람도 밥해줄 이도 없다. 그런데도 거기에 가고 싶다고, 매달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연금의 3분의 1을 아파트 관리비로 내더라도 집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집을 확인해봤다. 놀랍게도 사람만 없는 게 아니었다. 모든 게 없어졌다. 티브이, 에어컨, 냉장고, 하다못해 그릇과 휴지통도 없어져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너무 황당해서 이리저리 연락을 취해보고 알게 된 사실은 이렇다. 할머니 집에 왔던 방문요양보호사가 할머니가 입소한 후 집에 있던 물건들을 가지고 간 것이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소개해준 사람도 이 요양보호사였다. 할머니는 살아서 집을 나왔고 지금도 살아 있고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도 요양 시스템의 관계자들은 마치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듯이 살아 있는 할머니의 집에 있는 물건들을 깨끗이 청소해 가져갔다.
고심 끝에 할머니를 다른 요양원으로 옮겨드렸다. 콧줄은 곧바로 제거됐고 식사도 잘하신다. 밥이 꿀맛이라며 더 달라고 할 정도라고 요양원 직원이 귀띔해줬다. 가끔 기운이 없고 우울해질 때면 다시 식사를 못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요양원의 직원이 내게 전화를 했다. 그럼 또 나는 할머니에게 뜬금없는 안부 전화를 한다. 할머니의 식욕은 음식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바람이었고 누군가의 안부 전화와 요양원의 정성 속에 유지되었다. 그러니 콧줄은 할머니의 코와 위를 연결시켰던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력 투입으로 최대의 이윤을 뽑고자 했던 ○○요양원의 욕망을 연결시켜준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다행히 거기에서 빠져나왔고, 물건들은 경찰에 도난 신고 후 되찾았다. 하지만 또 다른 어르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급성기 질환으로 단기간 식사를 못하는 무연고 노인들에게 무분별하게 소변줄과 콧줄을 해버리는 의료라는 이름의 이 폭력은, 집으로 되돌아갈 길을 끊어버릴수록 이윤이 늘어나는 한국 사회의 돌봄 시스템에서는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기저귀는 하루에도 몇번씩 갈아줘야 하지만 소변줄은 한달에 한번만 갈면 된다. 시설의 입장에서는 손이 훨씬 덜 갈 수 있다. 하지만 소변줄은 할머니를 침대에 묶어두는 밧줄이다. ○○요양원에서 오랫동안 그 밧줄에 묶여 있던 할머니는 이제 침대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입소 전 수목원에 꽃구경 가자고 약속도 했지만 소변줄에 묶인 할머니는 그 꽃밭에 갈 수 없다. 봄이 온다. 얼마를 더 사시든 할머니에게 꽃피는 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