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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자리를 찾지 못한 슬픔

등록 2022-04-13 15:43수정 2022-04-14 02:10

코로나19 사망자가 크게 늘며 장례식장과 화장장 예약마저 어려워졌다. 지난달 17일 오후 경기도의 한 화장장 모니터에 화장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망자가 크게 늘며 장례식장과 화장장 예약마저 어려워졌다. 지난달 17일 오후 경기도의 한 화장장 모니터에 화장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조문영ㅣ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병원에서 연락이 온 것은 3월31일 오전 9시가 지나서였다.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습니다. 연명치료 여부를 보호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동의할 경우 상급병원으로 이송되며 임의로 중단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지? 제이(J)는 이날 격리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예정이었다. 치매가 심해져 지난 일년 요양원에 머물던 그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게 일주일 전이다. 기저질환이 있던 제이는 감염병 전담요양병원으로 곧바로 이송됐다. 면회는 금지였다.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익히 들은 터라 안부를 묻기도 조심스러웠다. 열이 있는지, 산소포화도가 얼마인지 매번 수치만 확인했다. 그래도 크게 불안하진 않았다. 전날까지도 담당의는 걱정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연명치료라니? 에크모(체외막 산소공급 장치)가 있는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했지만, 80살 이상의 고령자는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병원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제이를 태운 구급차는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코로나19 거점병원에 도착했다. 중환자실 의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습니다. 이미 의식을 잃었어요.” 치료제 종류, 부작용, 본인 부담에 관한 설명이 몇분간 계속됐다. 뭐라도 물으려고 운을 떼니 그가 단호하게 잘랐다. “(말을) 끊지 마세요.”

한 시간쯤 지났을까. 병원에서 카카오톡으로 10초짜리 영상을 보내왔다. 제이가 기관 삽입을 한 채 누워 있었다. 주렁주렁 달린 인공호흡 장치 때문에 정작 그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뒤 보내온 영상에서 그는 좀 더 평온해 보였다. 상태가 나아진 건가? 의사의 전화가 찰나의 기대를 뭉갰다. “회복이 어렵습니다.” 다시 연락이 왔다. “두세 시간 남았습니다.” “임종을 준비하세요.”

장례식장도 만원이다. 제이가 오래 드나들던 병원의 장례식장에선 다음날 한 자리 가능할 수도 있단다. 사망진단서가 없으면 접수가 안 된단다. “담당의 말로는 두세 시간 남았답니다. 안 될까요?” 제이는 삶의 끝자락에서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중인데, 나는 이미 제이의 임종을 ‘바라는’ 인간이 되었다. 그 와중에 사람은 죽을 때 귀가 마지막으로 닫힌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카톡으로 음성이라도 보내면 제이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막상 녹음하려니 감정이 북받친다. 보호구를 착용하면 임종 면회가 가능하다는데 병원에서 거부하니 도리가 없다. 묻고 매달리기를 반복하던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제이씨는 3월31일 저녁 6시17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제이의 마지막 얼굴이 찍힌 사진이 문자로 전송됐다.

통곡도 잠시, 장례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다음날 빈소를 가까스로 구했으나 안치실이 문제였다. 화장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시신 보관을 두고 대란이 벌어지던 때다. 반쯤 포기한 채 병실에 하루만 모실 수 없는지 알아보던 차에 장례식장에서 연락이 왔다. “한 가족이 갑자기 화장 자리가 나서 곧 떠날 겁니다.” 제이의 마지막 선물 같았다. 죽음을 슬퍼해야 할 순간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상조회사에서 온 장례지도사는 화장장 예약부터 서둘렀다. 발인이 한참 늦어졌지만,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그는 거듭 말했다. “화장장 자리 한곳이 날 때마다 전국의 200개 상조회사 팀장들이 덤벼들고 있어요.” 엉뚱하게 국립공원 야영장 예약 풍경이 겹쳤다.

6일장을 마치고 제이가 머물렀던 요양병원을 찾았다. 진료기록을 복사해 의사한테 설명을 부탁했다. 병원 진단대로, 그의 상태는 돌연 나빠졌다. 하지만 코로나 치료제가 넉넉해서 일찍 처방받았다면, 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면, 근처 병원에 이송됐다면 상황은 꽤 달랐을 것이다. 요양병원은 재난 현장을 방불케 했다.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황급히 접수대로 달려와 소식을 전하고 사라졌다. “방금 한분 사망했어요. 병상 한 자리 생깁니다.”

이렇게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를 포함해, 3월 한달간 8172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이들의 가족도 내 가족처럼 황망하게, 때로 더 쓸쓸하게 고인과 작별했을 것이다. 의료 인력과 자원의 부족을 알면서도 정부가 갑자기 방역을 푼 결과이다. 경제 회복을 외치면서, 자본주의의 잉여 인구인 노인의 희생에 모두가 눈감은 결과이다. 장례를 마치고서야 찬란한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구경 인파로 거리가 북적인다. 슬픔을 토로할 시공간을 잃고만 모든 유족에게 위로를 건넨다. 부디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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