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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나는 초등돌봄전담사입니다 (상) / 김현희

등록 2022-04-20 18:28수정 2022-04-21 02:34

들쭉날쭉한 돌봄 시간도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줄었다 엿장수 맘대로였습니다. 예컨대 행사로 아이들의 하교가 늦어지면 늦어지는 대로 그때부터 근무를 시작해야 하니, 항상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비해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김현희 | 초등돌봄전담사

저는 올해로 10년째 초등돌봄전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 꿈은 대부분 선생님이었습니다. 저 또한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학교 현장은 조금은 냉정한 곳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사람 냄새를 몹시도 그리워하며 생활하는 1인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꿈을 이루고 살았으면 더 행복한 시간이 이어졌을 수도 있겠네요.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발버둥쳤지만 늘 제자리에 서 있는 저는 불안과 간절함을 안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학교에 근무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를 새삼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주부로, 아이들의 엄마로 가정에 헌신하며 살아왔네요.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에 초등 ‘배움터 지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안전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막는 등 학교 현장의 유해 환경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관할 교육청 단위로 각 학교 실정에 맞게 배치하는데 저는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배치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저는 시간을 촘촘히 나눠 정문 앞 교통정리와 내외곽 순찰, 학교 밖을 나가버린 아이들 찾기 등 저만의 규칙을 정해 배움터 지킴이 일을 해나갔습니다. 하루 4시간 근무에 월 55만~60만원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했던 저는 배움터 지킴이를 하면서 보육교사 자격증을 미리 취득해놓고 있었습니다. 2년간 배움터 지킴이를 하고 계약 만료 시점에 학교장이 채용하는 초등돌봄전담사 원서를 냈습니다. 수업 실연과 면접까지 마치고 합격했다는 소식에 아이들과 더 깊숙이 친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답니다.

제가 근무한 곳은 지역에서 제일 큰 초등학교였습니다. 돌봄교실은 늘 정원 초과였고 나머지 학생은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순서를 기다리는 곳이었습니다.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아이들과 생활한 시간이었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기엔 정원 초과의 돌봄교실이 너무 버거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네요. 저보다 늦게 입사한 한 돌봄선생님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을 채우면 안 되었기에 특히 금요일에는 7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약을 먹어가면서 버티고 참아내야 했습니다. 왜 그렇게 이상한 근로계약이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나름 즐거워야 하는 금요일이 제게는 악마의 요일이 되어 저를 압박해 왔네요. 저 혼자 많은 아이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이 짓눌러 금요일마다 약 봉투를 손에 쥔 채 버티고 또 버티어 나갔습니다.

처음 초등돌봄전담사를 했던 당시 토요일은 체험학습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체험학습은 반나절이라지만 하루를 올인해야 하니 몸은 천근만근 녹초가 되어버렸네요. 아이들 안전이 최우선이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차량이 부족한 날은 주저 없이 남편까지 동원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이들은 하루종일 뛰고 소리치고 뒹굴어도 에너지가 줄지 않는데, 우리 돌봄선생님들은 체력고갈이 오더라구요. 결혼과 함께 경력단절을 겪다 보니 제가 거기서 버티지 않으면 영영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하루하루 마음을 가다듬고 버텼습니다.

초등돌봄전담사의 근무시간은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대개 1만2000원의 시급으로 하루 2~4시간 일했습니다. 힘든 체험학습 등으로 한 주 근무시간이 60시간을 넘길 때가 있는데, 그렇더라도 주 최대 노동시간이 60시간 미만이라는 규정 탓에 근무일지에는 59시간으로 작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기계약의 조건 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만들어놓은 조항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는 수 없이 59시간을 넘기면,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마음으로 메웠습니다. 박봉에 힘든 나날이었죠. 몸이 힘들어도 급여가 어느 정도 받쳐주면 그나마 나은데 하는 회의감이 들어 서글픈 시간이었습니다.

들쭉날쭉한 돌봄 시간도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줄었다 엿장수 맘대로였습니다. 학교 행사 등이 잡히면 관리자가 시간제로 일하는 우리의 시간과 노동력을 마음대로 잘라서 썼습니다. 예컨대 행사로 아이들의 하교가 늦어지면 늦어지는 대로 그때부터 근무를 시작해야 하니, 항상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비해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물과 기름처럼, 유령처럼 학교 안에서 섞이지 못한 존재가 된 채 자존감의 추락을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초등돌봄전담사를 하며 큰 보람을 느끼는 건, 길을 가다 돌봄교실을 거쳐 간 아이들이 “선생님! 저 ○○이에요” 하며 반갑게 인사할 때였습니다. 훌쩍 큰 아이들을 보며 그 모습이 대견해 놀라고, 너무 잘 커준 아이들이 고마워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습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연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 실립니다. <한겨레>는 해마다 수상작 등 응모작 일부를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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